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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나의 여행/제주여행

제주여행 유채꽃 명소, 꽃보다 내 사진첩이 더 바빴던 하루

by 홍나와 떼굴이 2026.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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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 셋째 날은 솔직히 말해서, 날씨만 보면 “오늘은 그냥 숙소에 얌전히 있으세요”라고 제주가 직접 공지한 날 같았다. 오전 내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바람에 부지런한 여행자 모드는 잠시 접어두고, 박물관에 들러 비를 피한 뒤 점심을 먹고 낮잠까지 한숨 푹 자버렸다. 여행 와서 낮잠이라니 조금 아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제주에서 자는 낮잠은 그냥 낮잠이 아니라 ‘일정에 포함된 힐링 코스’처럼 느껴진다. 비 오는 제주가 괜히 사람을 느긋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그렇게 느슨하게 하루를 보내다가 오후가 되어 서귀포 올레시장에 잠깐 들러 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해변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어디 꼭 가야겠다는 목적지는 없었다. 제주여행을 하다 보면 꼭 계획대로 움직인 날보다, 이렇게 갈 곳을 정하지 않고 흘러가듯 달리던 순간이 더 오래 남는다. 특히 비가 막 그친 뒤의 제주 바다는 묘하게 차분하고, 구름 사이로 조금씩 풀려나는 빛은 괜히 사람 마음까지 말랑하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비가 그친 해변길 옆으로 노랗게 피어난 유채꽃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정말 우연히 만난 풍경이었는데도, 꼭 제주가 “오늘 하루 너무 축 처져 있었지? 이거라도 보고 가” 하며 건네준 작은 선물 같았다. 흐린 하늘 아래 더 환하게 살아나는 노란 유채꽃들, 바람 따라 살랑이는 꽃길, 비를 머금은 공기 특유의 촉촉한 냄새까지 더해지니 그 장면이 얼마나 예쁘던지 차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결국 떼굴님과 나는 홀린 듯 차를 세우고 꽃밭으로 들어갔고, 그 순간부터는 말 그대로 사진 삼매경에 빠져버렸다. 원래 여행 사진이라는 게 몇 장 찍고 끝낼 때도 많은데, 그날은 이상하게 셔터를 누를수록 더 아쉬웠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다 예뻐서, 여긴 어떻게 찍어도 제주 엽서 같고 저긴 또 어떻게 찍어도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비가 지나간 자리 위로 피어난 유채꽃밭이라 그런지 더 선명하고 더 생기 있어 보여서, 셋째 날 오후의 심심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오히려 여행 전체에서 가장 제주다운 순간 하나를 만나버린 기분이었다.

 

제주여행 셋째 날,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시작한 해변길 드라이브는 그렇게 뜻밖의 유채꽃밭으로 이어졌고, 계획보다 우연이 훨씬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비가 그친 제주 해변도로를 따라 달리다 우연히 만난 유채꽃밭의 풍경과, 그 속에서 머물렀던 늦은 오후의 감정을 천천히 기록해보려고 한다.

 

1. 비가 그친 뒤의 제주는 확실히 조금 다르게 보였다. 같은 길인데도 맑은 날의 제주와는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고, 촉촉하게 젖은 공기와 잔뜩 흐린 하늘 덕분에 오히려 풍경의 색이 더 또렷하게 살아났다. 특히 해변길을 따라 이어지던 유채꽃밭은 햇빛이 강하게 비추는 시간보다 이런 흐린 오후에 더 부드럽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노란 꽃은 환했고, 연보랏빛 꽃들은 그 사이를 자연스럽게 메워주고 있었고, 검은 돌담은 역시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묵직하게 잡아주고 있었다. 제주가 왜 제주인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장면이었다.

 

2. 처음에는 그냥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너무 예뻐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어 들어가 보니, 꽃들이 누가 심어놓은 정원처럼 반듯하게 정리된 느낌이 아니라 바람 가는 대로, 계절이 시키는 대로 자유롭게 피어 있는 모습이라 더 좋았다. 억지로 꾸민 풍경이 아니라서 더 제주답고, 더 자연스럽고, 그래서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 풍경이었다.

 

3. 홍여사는 유채꽃 사이에 서자마자 금세 꽃밭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초록빛 바람막이 점퍼와 노란 유채꽃 색감이 은근히 잘 어울려서, 사진으로 보니 사람이 풍경 속에 들어간 건지 풍경이 사람을 위해 펼쳐진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활짝 웃는 표정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날의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비가 온 뒤라 머리카락도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꽃들은 제멋대로 얼굴 앞으로 들어오고, 자세도 완벽하게 꾸민 느낌이 아닌데 오히려 그래서 더 여행 사진답고 더 생생했다. 잘 찍은 사진도 좋지만, 나는 이렇게 그날의 분위기와 공기까지 같이 남아 있는 사진이 더 좋다.

 

4. 떼굴님도 벤치에 잠시 앉아 꽃길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는데, 그 장면 또한 참 제주스러웠다. 노란 유채꽃이 길가를 환하게 채우고 있고, 비가 막 그친 하늘은 금방이라도 다시 한 줄기 비를 내릴 것처럼 무겁지만, 이상하게 그 분위기가 전혀 우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용하고 차분해서 더 좋았다.

 

여행에서는 늘 맑은 날만 좋은 줄 알았는데, 이날은 흐린 하늘 아래의 제주가 얼마나 멋스러운지도 새삼 알게 됐다. 약간은 무심한 표정으로 꽃밭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이 괜히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져서 웃음이 났다. 본인은 그냥 잠깐 앉아 있었을 뿐인데, 사진 속에서는 제주 감성 전문 모델처럼 나와서 그 또한 여행의 작은 재미였다.

 

4. 제주 해변길을 따라 달리다 마주한 풍경은 노란 유채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아름다웠다. 돌담 사이로 바람 따라 자유롭게 흩어져 피어 있는 유채꽃들은 제주 봄의 명랑함 그 자체였고, 보는 사람 마음까지 환하게 밝혀주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그 화사한 풍경 한가운데서도 내 시선을 단번에 붙잡아버린 건 따로 있었다. 마치 “예쁜 건 알겠는데, 그래도 오늘의 주인공은 나야” 하고 말하는 듯, 도도하게 우뚝 서서 만개한 핑크 동백나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모습은 생각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노란 유채꽃이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봄의 인사라면, 핑크 동백꽃은 한층 더 고고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계절을 표현하고 있었다. 꽃송이 하나하나가 차분하면서도 기품 있게 피어 있었고, 둥글게 풍성한 나무 전체가 마치 제주 들판 위에 홀로 세워진 작은 궁전처럼 느껴졌다. 예쁜 꽃은 많지만, 이렇게 사람을 잠시 멈춰 세우고 넋을 놓게 만드는 꽃은 흔치 않다. 정말 그 앞에서는 괜히 말수도 줄어들고, 괜히 자세도 한번 고쳐 잡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그 자리에서는 서둘러 사진만 찍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천천히 꽃을 어루만지고,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한 송이 한 송이의 결을 눈에 담아보며 아주 짧지만 오롯이 동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행이라는 게 원래 바쁘게 움직이며 많은 곳을 보는 일 같지만, 가끔은 이렇게 한 풍경 앞에 오래 머무는 시간이 오히려 더 깊게 남는다. 특히 이 핑크 동백꽃은 보는 순간 감탄이 나오는 화려함보다, 오래 바라볼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품격이 있어서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5.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날의 풍경은 화려해서 예뻤다기보다, 우연히 만났기 때문에 더 특별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유명한 제주 유채꽃 명소를 찾아간 것도 아니고, 꼭 여기서 사진을 찍어야지 하고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비가 그친 오후,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채 해변길을 따라 달리다가 우연히 마주친 꽃밭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우연한 만남이 여행을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계획한 곳은 예상한 만큼 좋고, 우연히 만난 곳은 예상보다 훨씬 좋아서 오래 남는다. 아마 이날의 유채꽃밭도 그래서 더 선명하게 기억될 것 같다.

 

6. 유채꽃은 참 신기한 꽃이다. 하나하나 가까이 보면 여리고 작고 소박한데, 모여 있으면 세상을 환하게 밝힐 만큼 힘이 있다. 제주에서 보는 유채꽃은 특히 더 그렇다. 검은 돌담과 바다 바람, 흐린 하늘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가장 제주다운 풍경을 완성해준다.

 

그래서인지 이 꽃밭 앞에서는 괜히 걸음을 늦추게 되고, 사진도 여러 장 찍게 되고, 별말 없이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단순하다. 멈춰 서서 보고, 웃고, 사진을 찍고,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는 것. 그날 우리도 딱 그랬다.

 

▲홍나&떼굴이 부부

7. 제주여행 셋째 날 오후는 그렇게 뜻밖의 유채꽃밭 덕분에 훨씬 더 환해졌다. 오전 내내 비가 내려 조금은 느슨하고 조용하게 흘러가던 하루였는데, 해 질 무렵 우연히 만난 이 꽃길 덕분에 셋째 날의 기억은 단번에 화사해졌다. 여행은 역시 얼마나 많은 곳을 갔는가보다, 어떤 순간을 만났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이날 우리가 만난 순간은 분명, 제주가 슬쩍 내어준 아주 예쁜 선물 같은 장면이었다.

▲제주로 가는 이 비행기, 아직 몸은 좌석에 묶여 있는데 마음만큼은 이미 귤 한 박스 사고 바다 앞에서 멍때리는 중이었었다.
▲제주공항 렌트카 셔틀버스 타고 미리 예약한 렌터카까지 착착 인수 완료, 여행의 진짜 시작은 관광지가 아니라 주차장에서부터였다.
▲제주여행 3박 4일을 무사히 마치고 김포공항 도착 인증샷 한 컷, 피곤은 얼굴에 살짝 묻었지만 마음만큼은 아직도 제주 올레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8. 3박 4일의 제주 여행은 그렇게 무사히, 그리고 아주 야무지게 끝이 났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내려 렌트카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미리 예약해둔 차를 인수해 월드컵리조트에 짐을 푸는 순간부터 이번 여행은 이미 절반쯤 성공한 셈이었다. 비자림의 고요한 숲길에서는 마음이 맑아졌고, 치유의 숲에서는 이름 그대로 조금 더 나아진 기분을 얻었고, 허니문하우스와 세연교에서는 제주가 왜 늘 낭만의 섬으로 불리는지 새삼 실감했다. 올레시장에서는 두 손 무겁게, 유채꽃밭에서는 마음 무겁게가 아니라 마음 가볍게, 박물관에서는 추억까지 한 겹 더 얹어가며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채웠다. 솜리식당, 일품순두부, 착한전복집에서의 맛있는 한 끼는 여행의 피로를 핑계 삼아 더 맛있게 느껴졌고, 하나로마트와 이마트 장보기마저도 어쩐지 관광 코스처럼 신나서, 이쯤 되면 우리는 제주를 여행한 건지 제주에 스며든 건지 잠시 헷갈릴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김포공항에 도착해 여행의 끝을 마주하니, 아쉽다는 마음보다 “아, 잘 다녀왔다”는 뿌듯함이 먼저 밀려왔다. 여행은 끝났지만, 제주에서 보았던 숲의 색과 바다의 기척, 시장의 활기와 노란 꽃밭의 물결은 쉽게 일상으로 반납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다음에는 3박 4일이 아니라 한달살기, 아니면 6개월살기쯤으로 더 길게 제주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제주에서 눈뜨고, 하루 종일 올레길을 걷고, 다시 제주에서 잠드는 날들의 연속. 그것이야말로 아들, 딸 열심히 키워서 모두 분가시켜 이제는 자유로운 노후의 홍여사가 마음속에 꾹꾹 눌러 적어둔 가장 근사한 소망인지도 모르겠다.

 

바쁘게만 흘러가던 시간 속에서 잠시 벗어나, 조금 느리게 걷고 조금 오래 바라보며 살 수 있는 곳. 제주가 이번 여행 끝에 남겨준 건 사진 몇 장이 아니라, 언젠가 꼭 다시 돌아오고 싶은 삶의 장면 하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번 제주 여행의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예고편이다. 다음 편 제목은 아마도, “홍여사 제주 장기 체류 프로젝트, 드디어 시작”쯤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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