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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나의 마음공부

에크하르트 톨레: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아름다움은 현존의 고요함에서 생겨난다'

by 홍나와 떼굴이 2022.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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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현존의 고요함에서 생겨난다

 

Q. 나는 당신이 방금 묘사한 것을

가끔씩 혼자 있을 때나

자연에 둘러싸여 있을 때

순간적으로 경험하곤 합니다.

 

: 그렇습니다.

선사들은 그러한 통찰의 순간을

 '삼매' 라고 합니다.

그것은 완전히

현존하는 무심의 순간입니다.

삼매는 영속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반가운 일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달음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면서도

여러 번 경험했을 수 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 웅장함,

신성함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현존이 필요합니다.

 

맑게 개인 밤하늘의

무한한 공간을 응시하면서,

그 완전한 평온함과

불가해한 광할함에 위압당해

본 적이 있습니까?

 

숲 속에서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진정으로 그 소리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있습니까?

 

고요한 여름 저녁 해질 무렵에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것들을 의식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지해야 합니다.

잠시 개인적인 고민거리를 털어버리고,

과거와 미래, 그리고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고 있어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합니다.

바로 완전한 현존이

요구되는 겁니다.

외부적인

형상의 아름다움 너머에는

이름을 부를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 깊은 내면의 성스러운

본질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러한 내면의 본질이

언뜻언뜻 비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현존하고 있을 때에만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불가해한 본질과

당신은 현존의 하나이며

같은 것이 아닐까요?

당신이 없어도

그것이 거기에 있을까요?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십시오.

거기서 당신 자신을 찾아 보십시오.

 

 

우리는 그러한

현존의 순간을 경험하면서도

자신이 잠깐 무심의

상태 속에 있었다는 것을

쉽게 깨닫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 상태와

생각의 유입 사이에

간극이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삼매는 마음이 들어오기 전에

단 몇 초 동안 지속되었을 뿐이지만,

여하튼 거기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음은 아름다움을

인지할 수도 창조할 수도 없습니다.

잠시에 불과했지만

당신이 완전히 현존하고 있는 동안,

그 아름다움과 신성함은

거기 있었습니다.

 

그 틈새가 너무 짧고

당신이 충분히 각성하고

경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무심과

그것을 생각으로 분별하고 해석하는

마음과의 기본적인 차이점을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 시간의 틈새가 너무 짧아서

하나의 과정으로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생각이 들어와서

당신에게는 기억으로밖에

남지 않은 것입니다.

지각과 생각 사이의 틈새가

넓어질수록 깨어 있는 상태를

더욱 깊이 지속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갇혀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꽃이 정말 예쁘다' 고 말하지만,

그것은 단지 자동적인 정의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고요하지 않고 현존하지도 않으므로

꽃을 보고도 그 본질과 신성함을

진정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을 모르고 있으며,

그들 자신의 본질과 신성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는 마음이 지배하는

문화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대의 미술, 건축, 음악, 문학 등에서

아름다움과 내면의 본질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창조하는 사람들이

마음으로부터 잠시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정한 창조성과

아름다움이 생겨나는

내면의 장소와

만나지 못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제멋대로

괴물을 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화랑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폐허가 되어 버린 도시의 풍경을

돌아보십시오.

일찍이 어떤 문명도

이렇게 흉악한 몰골을

드러낸 적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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