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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나의 여행

남원 광한루원 탐방!

by 홍나와 떼굴이 2022.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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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묵객들은

궁궐에는 경회루가 있고,

지방에는 광한루와 더불어

평양의 부벽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누각이라 불려지는데

그 중 으뜸은 광한루라 했다.

 

경회루는 궁궐의 건물로

왕실에서 지은 곳이며

지방의 누각 중 평양의 부벽루는

애석하게도 아직은 가 볼 수 없는 곳이고,

진주 촉석루는 안타깝게도 

6 . 25때 불에 타 지금의 건물은

1960년 5월경 복원한 것으로

복원 역사가 짧으며, 밀양의 영남루

역시 1844년에 지어

복원 역사가 길지 않다.

그러나 광한루는 1419년에 지어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탔으나

1626년에 복원한 건물로

복원 역사 면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지난 토요일

지리산둘레길을

걷겠단 일정이었었는데

봄을 재촉하는 단비가 내려

일정을 남원 광한루를 거쳐~

광양 매화마을을 다녀오는

코스로 일정을

변경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남원 광한루원을

한바퀴 돌아보자

 

광한루원은

경복궁 경회루의 지원과

전남 담양군에 있는

양산보가 조성한 소쇄원과 함께

한국의 정원을 대표할 만큼 우수하며

독특한 조경양식이 탄생하는

모체가 되고 있다.

 

정원의 사상적, 역사적 배경은

자연적 사고방식 즉,

신선사상과 음양오행사상,

풍수지리사상 또는

수심양성의 도로 표현되는

송, 죽, 국, 매의 사절과

유교의 선비사상이다.

 

그중에서도 신선사상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신선정원의 양식은

생성시기인 조선시대의

제도적인 원인에 기인하여

유교문화가 지방으로 

분산되면서 형성되었다.

 

 

 

 

옛적 우리 조상들은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조성에 세심한 배려를 하여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이 땅에 건립하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생각은 분합문을 달아

열어놓고 지내어 건물이

탁 트이게 처리하였다.

 

 또한 누원 앞에 호수는

은하를 상징하도록 하여

하늘의 옥황상제가 사는 곳처럼 꾸며서

월궁의 광한청허부와 같다고 한

광한루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정원은 인공적인 멋을 가리지 않고

토양 구릉을 자연 그대로 살렸으며,

드문드문 자연석 고인돌을

구릉에 그대로 놓아

작은 언덕 공간처럼 하고,

정원수도 전지를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자라도록 하여

흡사 숲속에 있는 착각이 들게 한다.

이러한 연유로 건축기술과

사회상, 생활, 이상향 등

당시의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명승지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현재의 누원 모습은

누원 근처 시장이

불타고 옮긴 것을 비롯하여

수차례 확장 사업을 하면서

차례로 근처의 부지를 매입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광한루원

근세 전기에 조영된

대표적인 정원으로 꼽히고 있는데

한국의 독특한 조경양식이

탄생하는데 모체가 되고 있으며

정원을 대표할 수 있을 만큼

질적으로 우수하고

통시대적 문학사에 나타난

정원양식을 표현하고 있어

전통예술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광한루의 앞뒤에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 계관(桂觀),

’광한루(廣寒樓)란 편액이 걸려있다.

호남제일루라는 말 그대로

호남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라는 뜻이며,

광한과 청허부는

하늘나라 월궁의 옥경에 들어서면

‘광한 청허지부’가 있다는

신화적 전설을 상징하고,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을 상징한다.

 

광한루 누각에 걸린

여러 편액중 광한루란 편액은

신익성이 호남제일루와 계관의 편액은

1855년 남원부사 이상억이 누각을

중수하면서 손수 써 걸었다.

이 중 계관의 편액은

동학란 때 없어진 것을

1930년대 광한루를

대대적으로 보수할 때

남원유지 강대형이

다시 써 건 것이다.

 

또한 현재 광한루에 걸린

광한루란 편액은

전민의원 조정훈이 쓴 글씨라고 하는데

금암봉의 금수정과 용성관의 편액

글씨도 썼다고 전해온다.

호남제일루

 

 

광한루원 앞에는

동서 100m, 남북 59m에 이르는

정방형의 호수와

호수 속의 3개의 섬(삼신산),

그리고 서편에 4개의 홍예로 구성된

오작교로 구성되어 있다.

 

오작교는 평교지만

교각의 형태가 원형으로 된 홍예교로

누정원을 구성하는

구성물의 일부로 처리되어 있는데

직선적이고 평탄한 노면에 율동감을 주어

경관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요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호수에 직녀가 베를 짤 때

베틀을 고이는 돌인 지기석을 넣고

견우가 은하수를 건널 때 쓰는 배인

상한사를 띄워 칠월 칠석의

전설의 은하수와

오작교를 상징한다.

 

호수는

현재 상태에서 1:2의 비를 갖는

장방형으로 축조되어 있으며

그 안에 3개의 섬이 동서방향으로

거의 같은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호수 북쪽 광한루 앞에는

돌 자라가 동남방향으로

향해 놓여 있어

신선사상에 입각한

지킴이의 기능을 갖고 있어

전체적으로 광한루원의 구성은

넓은 은하세계, 즉 천체우주를

상징하고 있다.

완월정은

1971년에 신축된 수중누각으로

1963년 채기묵 남원군수의 재임

(1962년 4월 5일~1963년 5월 31일)

당시부터 연차계획을 세워

경내를 확장하고

주변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증설된 건물이다.

 

1969년 기존 호수를 확장하여

인공 방장형 호수를 축조한 후

수중누각으로 신축한 것인데

2층 누각이다.

 

누각의 이름은

옛날 남원성 남문의 문루(門樓)인

완월루(翫月樓)에서 따온 것이다.

동학농민동기(1894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원성의 남문인 완월루가

지금의 스탠다드차터드은행

네거리에 있었다.

완월정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게

밀랍인형과 생활 도구들을

전시해 놓았다.

 

사랑의 맹세판과

장원급제 기원단이 있으며

춘향캐릭터 상품도 판매한다.

조선시대 우리나라 고전

'춘향전'의 무대가 된 집이다.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광한루 구경길에 올랐을 때

그네를 뛰고 있던 성춘향에게 반해,

춘향이 살고 있는 월매집 부용당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집으로

춘향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월매집'이라고 하였다.

 

월매집

 

 

관람로 주변에는

각종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포토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음

암행어사 출두

 

 

 

그네타는 춘향이

 

 

 

 

장원급제 후 금의환향

 

 

혼쭐나는 변사또

 

 

 

 

변사또와 이방

 

옥지환은

여성이 쓰는 가락지로

여성의절개의 마음을 담은

장신구의 하나

 

옥지환은

이몽룡과 춘향이

이별할때 준 정표이고

암행어사로 이몽룡이 출두하여

춘향의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할때 쓰였던 정표의 상징물

옥지환을 상징하는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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