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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나의 여행

경주 원성왕릉(괘릉) 사적 제 26호

by 홍나와 떼굴이 2022.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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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릉은 신라 제 38대

원성왕(785~798)의 능이다.

괘릉이라는 별칭은 왕릉이 조성되기 이전에

연못이 있어 유해를 수면상에 걸어 

안장하였을 것이라는 속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 '걸어놓은 능'

이라는 뜻이다.

 

 

지난 주말 떼굴님과

원성왕릉(괘릉)주변을 걸으며

역사의 향기를 느껴 보았다.

 

 

관람시간 : 정해진 관람시간 없음 
관람료 : 무료 
문화관광해설시간 : 10:10-17:00 
주차정보 : 원성왕릉 주차장

(괘릉리 621, 무료) 이용 

 

주소: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산 17

 

 

원성왕릉은

낮은 구릉의 남쪽 소나무 숲에 있는 것으로

신라 제38대 원성왕(재위 785∼798)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원성왕의 이름은 경신이며

내물왕의 12대 후손으로

독서삼품과를 새로 설치하고

벽골제를 늘려쌓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시체를 수면 위에 걸어 장례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약 23m, 높이 약 6m이다.

왕릉 앞 석상들 가운데,

마주보고 있는 무인상 한 쌍이

이국적인 외모로

깊은 눈, 넓은 코, 숱이 많은 수염 등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국제 무역의 중심지로

당시 신라를 떠올리면,

무인석의 모델이 무역을 위해

신라에 왔다가 눌러 살게 된

서역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흙으로 덮은 둥근 모양의 무덤 아래에는

무덤의 보호를 위한 둘레석이 있는데,

이 돌에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봉분 바로 앞에는 4각 석상이 놓였고

그 앞으로 약 80m 떨어진 지점부터

양 옆으로 돌사자 두쌍·문인석 한쌍·

무인석 한쌍과 무덤을 표시해주는

화표석(華表石) 한쌍이 마주보고 서 있다.

 

이 석조물들의 조각수법은

매우 당당하고 치밀하여 신라 조각품 중

가장 우수한 것으로 꼽히고 있는데,

특히 힘이 넘치는 모습의 무인석은 서

역인의 얼굴을 하고 있어

페르시아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원성왕릉의 무덤제도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둘레돌에 배치된 12지신상과 같은

세부적인 수법은 신라의 독창적인 것이다.

또한 각종 석물에서 보여지는

뛰어난 조각수법은 신라인의

예술적 경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신라인의 치밀하면서도 여유있는

해학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데,

봉분 주변에는 십이지상을 

새긴 둘레돌을 둘렀고,

주위에 수십 개의 돌기둥을 

세워 울타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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