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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나의 여행/헝가리 여행

[헝가리 부다페스트 여행 2일차]부다 성에서 발견한 시간의 향기: 도시를 가르는 역사의 증인

by 홍나와 떼굴이 2024.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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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에서의 낭만적인 2박 3일을 뒤로하고 도착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마침내 맞이한 첫날밤, 8월 20일 헝가리 건국기념일을 기념하는 화려한 불꽃축제 어부의 요새와 다뉴브강을 배경으로 펼쳐졌다.

 

역사적인 명소인 어부의 요새 옆에 자리한 힐튼 부다페스트 호텔에서의 편안한 휴식은 여행의 피로를 씻어주었고, 창가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과 함께한 둘째 날의 조식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로맨틱했다.

 

그 후 발걸음을 옮겨 방문한 부다성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감동과 함께 도시의 고풍스러운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지금부터 저와 함께 부다성의 고풍스러운 매력 속으로 빠져들어 보실까요? ㅋㅋ

▲부다페스트의 상징적인 명소인 부다성(부다성, Buda Castle): 초기 역사와 창건과 고딕 양식의 발전

 

 

1. 부다성의 기원은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241년 몽골의 침략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헝가리 왕 앨브레히트(Albrecht) 왕에 의해 최초로 성곽이 건설되었다. 당시의 성곽은 주로 방어 목적으로 지어졌으며, 부다페스트의 전략적 위치를 활용해 몽골군의 추가 침략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4세기 들어 부다성 헝가리 왕 마티아스 1세(Máté I)에 의해 고딕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다. 이 시기에 성곽은 더욱 화려해지고, 왕실의 권위를 과시하는 중요한 건축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부다성은 헝가리 왕실의 주요 거주지로 사용되었으며,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와 파괴 그리고 바로크 양식과 부흥 .

 

 

2. 16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의 헝가리 침공으로 인해 부다성은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다. 1541년 오스만 군대에 의해 성곽이 점령되면서, 부다성은 군사 기지로 전환되고 많은 건축물이 파괴되었다. 이 시기는 부다페스트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로 남아있던 시기로, 부다성은 오스만 제국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다.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반에 걸쳐 부다성은 다시 한번 재건축되기 시작했다. 이때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향 아래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되었으며, 성곽 내에 궁전과 공공건물들이 새롭게 조성되었다. 이 시기의 부다성은 왕실의 권위와 문화적 위상을 다시 한번 과시하는 역할을 했다.

▲부다성의 네오-르네상스와 근대화, 제2차 세계대전과 복원

 

 

3. 19세기 중반, 부다성은 네오-르네상스 양식으로 대대적인 재건축을 거쳤다. 이 시기에 부다성은 예술과 교육의 중심지로 발전하며, 헝가리 의회와 여러 박물관이 자리하게 되었다.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형성 이후, 부다성은 더욱 화려하고 장엄한 모습으로 변모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부다성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며, 많은 역사적 건축물이 파괴되었다. 전쟁 후에는 부다성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고,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인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오늘날 부다성은 박물관, 갤러리, 문화 센터로 사용되며, 방문객들에게 헝가리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현대의 부다성

 

4. 현대의 부다성은 역사적 유산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인 편의 시설을 갖춘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성 내에는 헝가리 국립 미술관,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 국립 사진 갤러리 등이 위치해 있어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제공한다. 또한, 부다성에서 바라보는 다뉴브강과 부다페스트의 전경은 방문객들에게 잊지 못할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부다성은 그 긴 역사 속에서 수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여전히 헝가리의 문화와 역사를 상징하는 중요한 장소로 남아 있다. 부다성의 웅장한 건축물과 아름다운 전망은 부다페스트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그 자체로 하나의 살아있는 역사책이라 할 수 있다.

▲부다성 입장티켓판매소

 

 

5. 부다페스트의 부다성에 들어서기 위해 수많은 방문객들이 모인 모습이다. 석조의 아치와 정교한 천장 조각 사이로 흘러드는 햇빛이 긴 대기열을 비추며, 마치 과거 왕조의 화려함을 연상케 한다. "티켓"이라는 표지판 아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입장을 기다린다. 이들 모두는 부다성의 수많은 전시회와 역사적 아름다움을 체험하기 위해 여기 모였다.

▲부다페스트의 숨결, 부다 성으로의 초대: 부다 성안으로 들어가는 입구!

 

▶이곳을 방문할 때는 카메라를 꼭 챙겨 성벽의 디테일과 성문을 수호하는 경비원의 고즈넉한 모습을 담아보자. 부다 성의 입구는 단순히 관광지로서의 가치 뿐만 아니라,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상징적인 이미지로서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4. 부다성 입장티켓을 들고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오르는 각 발걸음은 부다페스트의 역사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는 여정이며, 성내에서 마주치는 각 조각상과 고풍스러운 벽화들은 그 시대의 이야기를 조용히 속삭인다.

 

이 계단을 올라서면, 방문객들은 부다성의 다양한 전시회와 콘서트 홀, 화려한 연회장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모든 공간들은 과거 헝가리 왕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창문과도 같다. 옛 왕과 왕비가 걸었던 이 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방문객들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신들의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5. 의자는 황금빛 장식과 진한 붉은 색 벨벳으로 덮여 있으며, 왕족이 사용했을 법한 고급스러움을 자아낸다. 벽에 걸린 액자는 궁전의 장엄한 내부를 담고 있어, 방문객들에게 당시의 화려한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창이다.

 

방문객들은 이 의자 앞에서 잠시 멈추어 그 시대의 권위와 우아함을 상상하며, 그들이 걸어온 길을 돌아볼 수 있다.

 

 

6. 부다페스트의 심장부에 자리 잡은 부다성의 이 홀은, 넓은 유리 천장 아래 조화롭게 배열된 붉은 의자들이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기다리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공연, 강연, 그리고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현대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햇빛이 유리 천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내려와 홀 전체를 환하게 밝히며, 방문객들들 마치 궁중의 무도회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이 들고, 천장의 유리 구조물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하늘의 모습을 그대로 내부로 투영시켜,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7.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a, 1717년 5월 13일 – 1780년 11월 29일)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중요한 통치자로, 오스트리아, 헝가리, 보헤미아의 여왕으로 재위한 인물이다. 그녀는 유럽 역사에서 강력한 여성 통치자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그녀의 통치 기간 동안 중부 유럽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초기 생애와 결혼

마리아 테레지아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그녀는 합스부르크 황제 카를 6세의 딸로 태어나, 황제의 후계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혼이 중요한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었다. 1736년, 그녀는 프랑스의 루이 15세의 아들인 프랑수아-아우구스트와 결혼하여 부부로서의 동맹을 강화했다.

 

 

 

8. 카를 6세가 1740년에 사망하자, 마리아 테레지아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여왕으로 즉위했다. 그러나 그녀의 즉위는 샤를로트 칸트초프라는 오스트리아 공작의 반대로 도전을 받았다. 이로 인해 프리슬러전쟁(1740-1748)이 발발하게 되었고,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군사적,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전쟁은 그녀의 승리로 끝났으며, 그녀는 정당한 통치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교육 개혁과 내정 개혁

마리아 테레지아는 교육과 행정 개혁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의무 교육 제도를 도입하여 국민의 교육 수준을 향상시키고, 관료 제도를 개혁하여 행정의 효율성을 높였다. 또한, 세금 체계를 개편하고 경제 정책을 통해 국가 재정을 강화했다.

▲오스트리아의 여왕이자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여왕이었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화

 

종교 정책과 사회 개혁

9. 마리아 테레지아는 종교의 관용을 확대하고, 카톨릭 교회의 권위를 유지하면서도 다른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다. 이는 다종교 국가인 합스부르크 제국 내의 종교적 갈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그녀는 농노제를 제한하고, 농민의 권리를 일부 향상시켰다.

군사 개혁과 외교 정책

마리아 테레지아는 군사 개혁을 통해 합스부르크 군대를 현대화하고, 국방력을 강화했다. 그녀는 병사의 복지를 향상하고, 군사 훈련을 체계화하여 전쟁 준비태세를 강화했다. 외교적으로는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만 제국 등과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합스부르크 제국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외교적 균형을 추구했다.

후계 문제와 레지덴츠 제도

마리아 테레지아는 16명의 자녀를 두어 후계 문제를 안정시켰다. 그녀의 아들 프란츠(후에 프란츠 1세)와 딸 마리아 안나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후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레지덴츠 제도를 도입하여 지방 자치와 중앙 집권을 조화롭게 관리하려 했다.

유산과 영향

마리아 테레지아의 통치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현대화와 중앙집권화를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의 개혁은 후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중부 유럽의 정치 지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녀는 여성 통치자로서 당시의 편견을 극복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 모범적인 인물로 기억된다.

▲부다성을 바라보는 장엄한 전경을 묘사하고 있는 그림

 

10. 이 그림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부다성을 바라보는 장엄한 전경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 속에서 부다성은 도나우(다뉴브) 강변에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아래 강가에서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선착장에서는 상품을 하역하는 장면과 다양한 배들이 물살을 가르며 오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풍부한 색감과 세밀한 묘사는 이 그림을 통해 보는 이들에게 당시 부다페스트의 생동감 넘치는 일상과 활발한 무역 활동을 느끼게 한다. 강변을 따라 나란히 줄지어 있는 건물들과 깔끔하게 정돈된 강가는 이 도시가 얼마나 잘 조직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부다성의 웅장한 실루엣 아래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은, 이 고성이 부다페스트의 상징이자 중심임을 강조한다.

▲부다성 내부에 위치한 조각 전시관

 

11. 전시된 조각들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중세,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역사적 인물과 신화적 캐릭터를 묘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조각들은 각각의 시대와 문화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용모, 의복, 그리고 자세를 통해 당시의 예술적 표현과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각 조각은 헝가리와 유럽의 깊은 역사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전달하며, 이는 부다성이  문화와 역사의 보고로서의 가치를 높여준다. 

▲부다성 내부에 위치한 고대의 통로로, 보통 '지하 터널' 또는 '지하 통로'

 

12. 이 통로는 성의 방어 및 물류 이동을 위해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중세 유럽의 군사적 방어구조 지하 저장 시설을 반영하는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 건축물의 벽은 거친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반원형 아치 천장은 로마네스크 건축 스타일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구조는 공간의 안정성을 높이고, 중세 건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내부의 공기 순환을 돕고 외부의 충격에 강한 내구성을 보여준다.

 

이 통로의 상징적 의미는 주로 보호와 지속성에 있다. 과거에는 성의 방어력을 강화하고, 비상시에는 주민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이 통로는 부다성이 겪은 여러 전쟁과 역사적 사건들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공간이다.

▲부다성의 역사적 구조와 설계를 묘사한 모형도

 

13. 이 모형은 부다성이 어떻게 지어졌으며, 시간에 따라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전시물이다. 벽에 그려진 성의 설계 도면과 함께 이 모형은 부다성의 전략적 위치와 군사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성이 어떻게 도시의 방어선으로 기능했는지를 설명한다.

 

이 모형은 방문객들에게 부다성의 복잡한 구조와 방대한 규모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시각적 수단으로 각 섹션과 탑, 벽은 성의 방어적 기능과 함께 중세 시대의 건축 기술을 잘 보여주며, 성이 겪었던 여러 시대의 변화와 개조를 통해 그 역사의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부다성 내부에 위치한 한 홀 또는 회랑랑으로 통하는 입구!

 

14. 전시 공간이나 갤러리로 사용되는 것 같다. 고전적인 백색의 벽면과 정교한 몰딩, 그리고 천장에 있는 섬세한 석고 작업은 19세기나 그 이전의 유럽 궁전 건축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부다성에 전시된 헝가리 왕관

 

15. 이 왕관은 헝가리 왕실의 상징이며, 과거 헝가리의 국왕들이 대관식 때 착용하던 중요한 장식품이다. 이 왕관은 국가의 정체성과 왕권의 신성함을 상징하며, 헝가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왕관은 귀중한 금속과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십자가와 종교적 아이콘으로 꾸며져 있다. 이는 왕권이 신의 의지에 의해 부여되었음을 상징하고, 국왕의 권위를 신성불가침의 것으로 만들어 준다.

▲열 개의 문으로 구성된 '부다성의 기적'

 

16. '부다 성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영국 출생의 헝가리계 미국인 아티스트 샘 하바드토이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예술 작품은 열 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다 성의 중요한 역사적 및 문화적 주제를 탐구하는 더 큰 전시의 일부이다.

 

설치된 각 문은 부다 성의 풍부한 역사의 다양한 부분을 대표하며, 관람객들이 그 문을 통과하면서 헝가리의 과거와 성의 중심적인 역할을 발견하도록 초대한다.

▲영국 출생의 헝가리계 미국인 아티스트 샘 하바드토이에 의해 만들어진 '부다성의 기적' 이란 작품

17. 다양한 시대와 이야기를 통해 부다 성과 부다페스트의 정체성을 형성한 역사적 계층을 탐험하게 한다. 문이라는 모티프의 사용은 역사적 장을 여닫는 상징으로서, 문화유산의 깊이로 들어가는 문자 그대로의 그리고 은유적인 통로를 제공한다.  

▲부다성의 황홀한 연회실 입구

 

18. 이 입구는 성의 주요 연회실 또는 공식 행사가 열리는 홀로 이 공간은 정교한 목공예 천장, 우아한 샹들리에, 그리고 세밀하게 꾸며진 벽면 장식으로 장식되어 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이나 국가 행사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부다성의 왕실 회의실

 

19. 의자와 탁자는 전통적인 왕실 가구로 보이며, 과거 헝가리 왕실의 중요 인물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가구들은 일반적으로 국가의 중요한 회의나 왕실의 행사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고급스러움과 정교한 디자인은 왕실의 권위와 부를 상징한다.

 

 

20. 벽에 걸린 세 개의 초상화는 아마도 역사적인 헝가리의 왕이나 성인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들은 왕실 구성원이나 중요한 성인의 모습을 종교적,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 있으며, 이 방이 가진 역사적, 종교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요소다. 각 초상화는 고유의 이야기와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방문객들은 부다성의 깊은 역사적 배경을 엿볼 수 있다.

▲부다페스트 부다성의 숨겨진 보석: 화려한 접견실 탐방

 

21. 부다성 내부의 화려한 방, 아마도 접견실 또는 중요 회의실일 가능성이 높다. 이 공간의 건축과 내부 장식은 네오 르네상스 또는 네오-바로크 스타일을 반영하고 있으며, 세밀한 목공예, 금장식, 그리고 화려한 샹들리에가 특징이다. 천장의 복잡하고 섬세한 무늬는 그 시대의 장인정신과 예술적 세심함을 보여준다.

 

 

22. 이 방은 부다성의 중요한 행사나 국가적인 만남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고급스러움은 부다페스트의 왕실 역사와 문화적 유산을 잘 보여주는 예다.

 

방 안의 장식적 요소들은 부다성이 헝가리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국가의 중심지로 기능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부다성의 보석: 화려함이 살아 숨 쉬는 고딕 홀

 

23. 중앙의 웅장한 샹들리에와 세밀하게 장식된 벽난로, 그리고 벽에 걸린 수많은 장식적 요소들이 이곳의 역사적 중요성과 예술적 가치를 강조한다. 샹들리에는 보통 중요한 회의실이나 접견실의 중심에 위치하여, 공간에 우아함과 권위를 더하며, 벽난로는 그 시대의 장인정신과 세부적인 미를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 방은 아마도 부다성에서 중요한 왕실 행사가 열리던 장소일 것으로 보이며, 각 요소는 헝가리 왕실의 권위와 부를 상징한다. 벽에는 성인의 이미지와 더불어 세밀하게 조각된 목재 작업이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부다페스트 부다성의 숨은 이야기: 도시 공간을 장식하는 역사의 조각들

 

24. '도시 공간의 상징적 점유(Symbolic Occupation of Urban Space)'라는 주제로 여러 조각상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전시는 도시의 역사적, 문화적 상징을 탐구하며, 특히 공공장소에서의 예술 작품이 어떻게 역사적 사건들과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하는지를 보여준다.

 

사진 속 조각상들은 드라마틱하고 감정적인 모습으로, 각기 다른 역사적 순간이나 사회적 사건을 묘사하는 것 같다. 이러한 조각들은 도시의 공간에서 발생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기리거나 그 사건의 영웅적, 상징적 인물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부다와 페스트의 심장을 연결하는 '엘리자베트 다리': 도시의 상징적인 경관

 

25. 부다 성 내부 탐방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보이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위치한 유명한 '엘리자베트 다리'다. 이 다리는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을 연결하며, 그 우아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엘리자베트 다리는 원래 1903년에 완공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되었고, 1964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이 다리는 헝가리의 엘리자베트 황후(시시)에게서 그 이름을 따왔으며, 부다페스트의 도시 경관에서 중요한 랜드마크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전경과 도심을 가로지르는 도나우(다뉴브) 강의 장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최적의 위치로, 도시의 역동적인 모습과 평화로운 자연이 어우러진 곳이다. 방문객들은 이 다리를 걸으며 부다와 페스트 사이의 문화적 그리고 역사적 연결고리를 체험할 수 있다.

▲Művész Kávéház: 예술과 역사가 숨 쉬는 카페

부다성의 아름다운 건축물 내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부다성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동시에 도시의 역사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부다페스트 여행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부다 성에서의 경험은 제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도나우 강의 푸른 물결과 역사 깊은 성벽이 어우러진 부다 성은 헝가리의 문화와 전통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으며, 중세 건축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부다 성 정원을 거닐며 느낀 고요함과 고딕 회랑에서의 낭만적인 분위기는 부다페스트 명소로서의 매력을 한층 더해주었다.

 

운치 있는 카페에서의 여유로운 커피 한 잔은 이곳의 깊은 역사와 함께 특별한 여유를 선사했다. 부다페스트 관광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부다 성을 꼭 방문해 보시길 강력히 추천드린다. 이 아름다운 도시의 심장부에서 느낀 감동과 경이로움은 여러분의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아 부다 성의 아름다움과 부다페스트의 매력을 재차 만끽할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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