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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나의 여행

서산동부전통시장 산책

by 홍나와 떼굴이 2019.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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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동부 전통시장은

오랜 역사를 가진 서산장의

명맥을 잇고 있는 전통시장이다.

동부시장에는 어시장, 채소시장,

포목시장 등이 성업 중인데,

가장 활발한 거래를 보이는 것은

이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꽃게, 대하, 낙지, 어리굴젓

등을 파는 어시장이다.

 

 

아침 6시 서산동부 전통시장

한번 둘러보고 진국집식당에서

게국지백반으로 아침밥을 먹었다.

새벽시간이어선지 떡집,정육점

채소가게,생선집 몇군데만 열었더라.

서산동부시장 개요

서산은 예부터 ‘1년 농사를 지어 3년을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땅이 비옥했다. 따라서 일찍부터 시장이 개설되었으며, 19세기에 이미 9개의 시장이 개설되었다.일제강점기 때에는 일본인과 중국인 상인들이 서산으로 많이 들어왔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조합이 생기기도 했다. 이 무렵 인천과의 여객선이 지나고 중국과 직접 바다를 통해 교역을 하면서 여기저기 시장이 개설되고 번영했다.해방 이후 1956년에 서산 읍내장은 장터를 옮기고 오늘날의 동부시장으로 변신했다. 1970년대에는 서부시장이 추가로 개설되었고, 당시 서산 지역에는 13개의 정기시장이 개설되어 있었다. 오늘날 동부시장은 서산의 중심지에 위치하며 중심 시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01년에 서해안고속도로, 2009년 당진대진고속도로가 개통되어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동부시장은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서산동부시장의 어원

서산 지역은 삼한 시대에 치리국국이 있던 곳이다. 백제 때에는 기군이라고 불렸다가 고려 말기에 이 지역 사람인 정인경이 큰 공을 세워 서산(瑞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정인경은 새로 생긴 서산을 본관으로 제수 받아 서산 정씨의 조상이 되었다. 서산동부시장은 이러한 지역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서산 지역 시장의 형성

서산은 땅이 기름지고 인심도 넉넉해서 살기 좋은 땅으로 꼽힌다. 1년 농사를 지어서 3년 먹고살 수 있다는 말이 전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이중환도 《택리지》에서 서산이 땅이 비옥하고 편평하고 넓으며 물고기와 소금이 넉넉해서 부자가 많고, 대를 이어 살아가는 사대부가 많다고 평가했다. 또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전국이 난리가 났을 때에도 서산 땅에는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역사적으로 보면 서산은 충남 서북부 태안반도에 위치해 백제가 수도를 공주와 부여로 옮기면서 중국과 교류할 수 있도록 해준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또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삼남 지방의 세곡을 서울로 운송하는 중간 위치에 있었으며, 그 기착지는 서산의 중심인 내포항이었다.그러나 전반적으로 서산은 산업의 발전에서 비켜나 있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도 변을 당하지 않았을 정도로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었던 지역적인 특징 때문이다.서산에서 시장의 개설은 아주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이 지역 출신이었던 조선 중기 문신인 한여현은 읍지의 성격을 지닌 《호산록》을 남겼는데 그곳에 시장이 언급되어 있다.“본읍 시장의 창립은 혹은 오리거리인 소나무 아래에서 보기도 하고, 혹은 진장 언덕 위에서 보기도 하고 시냇가에서도 보게 했으니 본읍을 비롯하여 태안, 해미의 민간인들이 찾아와 모이는 장소의 편리에 따랐던 것인데 임진왜란 때에 본읍 가운데로 옮긴 후에 관리의 행패는 차마 말할 수가 없다.”여기에서 서산의 시장이 임진왜란 전부터 존재했고, 인근 지역인 태안이나 해미에서도 장을 보러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위에 기록된 장터가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시장의 발달 및 변천 과정

해방 이후 서산 지역에는 서산읍, 대산면, 음암면, 운산면, 해미면, 고북면, 안면면, 태안면, 소원면, 원북면 등에 11개의 정기시장이 서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1961년 8월 시장법이 제정되면서 정기시장이 줄어들고, 그 자리에 상설시장이 생기면서 정기시장보다 상설시장이 늘어났다.그러나 교통과 지리적으로 불리한 환경 때문에 서산의 상업은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눈에 띄는 것은 축산업으로 1969년에 서산농장이 생기면서 한국 최초로 대규모 축산이 시작되어, 기업 목장과 여러 작은 목장에서 소와 돼지 등이 사육되었다.1973년의 통계를 보면 서산읍에 동부시장에 이어 서부시장의 개설로 시장이 2개가 되었고, 부석면과 안면면에 있었던 우시장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사이에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서산 지역의 정기시장은 모두 13개가 개설되어 있었다.서산 지역은 대규모 간척지와 대산공업단지 등이 자리를 잡으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특히 1980년대 진행된 천수만 간척산업은 지도를 바꿀 정도로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삶도 크게 변했다.여기에 2001년 서해대교로 연결되는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울에서 서산까지 불과 2시간 이내로 가까워졌고, 인근에 당진대진고속도로가 2009년 개통되면서 대전과도 1시간 거리로 가까워졌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서산의 경제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특히 시장의 경우 정기시장이 대체로 쇠퇴하고 시내 곳곳에 들어선 대형 할인마트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서산 지역의 정기시장은 중심지인 서산이 크게 성장하고 교통의 발달과 농촌 인구의 감소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현재는 서산장과 해미장만 남고 모두 폐지되었다. 서산장과 해미장 또한 상설시장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서산동부시장의 변화

읍내장이었던 서산장은 예부터 서산 지역의 상업 중심지였다. 해방과 함께 주체적으로 상업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쑥대밭이 되었다. 그 이후 전쟁을 수습하면서 시장 또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1910년에 지금의 읍사무소 앞에 섰던 시장이 1926년 읍내리의 중심 지역으로 이전했는데, 다시 1956년에 읍내리에서 동문리로 확장, 이전하면서 서산장은 도약의 발판을 맞이했다. 한편 구장터는 서부저자시장이라는 정기시장이 서다가 서부종합시장으로 변신했다.서산장의 명맥을 이은 서산동부시장은 서산시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서산동부시장 입구에서 서산농업협동조합을 거쳐 번화1로로 이어지는 길은 서산시에서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으로 시장의 발전에 적합한 지리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시장의 대지 면적은 2만 2,943m2이고, 매장 면적은 7,628m2로 2011년 기준 263개 점포에서 1,168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점포를 소유한 사람이 263명, 종사자가 475명, 기타 노점상 등이 430명이다. 부대시설로는 주차장과 광장이 있으며, 수산물, 농산물, 의류, 주단, 철물, 잡화 및 일반 음식 등을 취급하고 있다.서산은 주변에 관광지가 많아서 여름에 피서객들이 많이 찾아오거나 휴가를 보내기 위해 떠나는 길목에 있어 해산물이 유명하고 그 때문에 동부시장 또한 어시장이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서산동부시장은 2005년에 주차장 부지를 확보해 다음해에 주차장을 조성했고, 2007년에 건물 보수를 통해 편의성을 더했다. 2011년에는 가스 시설을 개선하고, 2013년에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되어 꾸준하게 시설과 경영의 현대화를 꾀하고 있다.

 서산동부시장의 위치와 거래 품목

서산동부시장은 시내 중심가에 자리하고 있다. 서산시청 앞으로 1호 광장 교차로가 있고, 서산군청에서 보기에 왼편에 동부시장이 있다. 서산시청에서 동부시장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서산공용버스터미널이 나온다.서산동부시장의 주변에는 터미널을 비롯해 은행과 병원, 크고 작은 상가들이 있어서 쇼핑에 편리한 입지를 갖고 있다. 동부시장은 어시장, 채소시장, 포목시장 등이 성업 중인데 가장 활발한 거래를 보이는 것은 이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꽃게, 대하, 낙지, 어리굴젓 등을 파는 어시장이다.

시장의 지리적 배경과 인근 볼거리

서산은 동쪽으로 예산과 당진, 동남쪽으로 홍성, 서쪽과 북쪽은 서해 바다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산은 태안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해발고도가 50m 이하의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동서남북으로 낮은 산들이 서산을 에워싸고 있다.서산 지역에는 여러 개의 강이 바다로 흘러나가지만 조석간만의 차이가 심하고 수심이 낮아 항구는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항구 대신에 넓은 간석지가 간척되어 농지와 염전으로 활용되고 있다.서산의 볼거리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것은 가야산 인근 지역에 점재하고 있는 백제의 불교 유적들이다. 서산에 불교 관련 문화재가 많은 것은 바다를 통해 중국 남북조시대의 불교문화가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유입되었기 때문이다.가야산에는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국보84호 마애삼존불’을 비롯해서 고려시대 화엄 10찰 중 하나였던 보원사지, 백제시대 고찰이며 자연스러운 건축으로 유명한 개심사 등 불교 문화재가 숱하게 흩어져 있다. 하지만 폐사지만도 100여 곳이 넘는다.해미읍성은 현재 남아있는 3대 읍성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보존 상태가 좋아서 전형적인 읍성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해미읍성은 천주교 박해지로도 유명하다. 1866년 천주교를 박해할 때 1,000여 명의 신자들이 잡혀와 고문이나 처형을 당했는데 고문에 쓰였던 회화나무에는 아직도 철사가 박혀 있다.겨울이 되면 장관을 이루는 곳이 천수만이다. 1984년 간척사업으로 천수만 일대에 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철새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철새 떼가 천수만을 찾는 것은 인근이 평야 지대이기에 먹을 것이 많고 주요 이동 경로에 포함되어 있으며, 평균 기온도 높아서 철새들이 겨울을 나기에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먹을거리

서산은 서해안을 끼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해산물을 이용한 음식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꽃게탕이다. 간장에 마늘, 생강 등 갖은 양념을 버무려 끓인 서산의 꽃게탕은 독특하면서도 맛이 뛰어나다.서산의 어리굴젓은 간월도와 웅도에서 생산되는 자연산 굴을 이용해 담근다. 이곳에서 나는 굴은 몸에 미세한 털이 많아 양념이 잘 흡수되고, 발효되어 맛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서산의 어리굴젓은 조선시대 무학대사가 이곳 간월암에서 수도할 때 태조에게 진상하면서 유명해졌다.게국지는 서산의 일부 지역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토속 음식이다. 게국지는 겟국지, 갯국지, 깨꾹지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절인 배추와 무, 무청 등에 게장 국물이나 젓갈 국물을 넣어 만든 음식으로 민물새우, 농게, 돌게 등이 들어가 구수하고 개운한 맛이 일품인 겨울철 서민 음식이다. 원래는 게장을 먹고 남은 것을 버리지 않고 김치 남은 것을 넣고 끓여 먹던 일종의 김치찌개와 비슷한 것이었다.박속밀국낙지탕은 서산의 갯벌에서 많이 잡히는 낙지를 이용한 음식이다. 밀과 보리를 갈아 칼국수와 수제비를 뜨고 낙지를 넣어 요리하는데, 육수에 박속을 넣어 끓이는 게 특징이다. 박속의 깔끔한 맛과 낙지의 구수함이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조선시대 낙향한 선비들이 주로 먹었다고 전한다.우럭젓국은 서해안의 토속 음식 가운데 하나이다. 서산 지방에서는 제사상에 말린 우럭포를 올리는 관습이 있었는데, 제사가 끝난 뒤에 우럭포를 이용해 끓인 것이 우럭젓국이다.

◀분류,지역: 충남>서산

◀소재지: 충남 서산시 동문동 900

◀시장유형: 상설시장,문화관광형 시장

◀형성시기: 1956년

◀시장현황: 점포수 269곳, 시장 면적 22.943m2

◀특산물: 어리굴젓, 쌀

◀먹을거리: 게국지, 꽃게탕, 박속밀국낙지탕

◀같은 지역 다른 시장: 서부종합시장, 대산종합시장,해미시장

◀주변 볼거리: 해미읍성, 마애여래삼존불상,개심사,간월함,천수만

◀전화번호: 서산동부시장 상인회 041-665-5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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