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서루는..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보물 제213호. 정면 7칸, 측면 2칸, 팔작지붕.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죽서루는 삼척시의 서편을 흐르는 오십천(五十川)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자리잡고 있다. 창건 연대와 창건자는 알 수 없으나 《동안거사집》에 1266년(고려 원종 7)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1403년(조선 태종 3)에 삼척 부사(府使) 김효손(金孝孫)이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원래의 규모는 정면이 5칸이었던 것을 후일 양쪽 끝에 1칸씩을 늘린 것으로 보이며, 그 부분은 공포(栱包)의 형식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내부의 천장을 보면 당초 건물의 측면 외부에 나와 있던 도리의 뺄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 누각이 원래는 맞배지붕 건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공포는 주두(柱頭) 뒤의 두공(頭工)으로써 대들보를 받도록 한 후 그 보머리가 그대로 길게 나와서 외목도리(外目道里)를 직접 받고 있다. 제일 밑에 있는 첨차(檐遮)는 기둥머리에 꽂혀 있는데, 이는 주심포(柱心包)집 계통에서 볼 수 있는 수법이다. 그러나 그 첨차의 형태는 오히려 다포(多包)집 계통의 것을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조선 초기의 건축이지만 몇 번에 걸친 수리 때문에 원형이 손상된 부분이 많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13호로 지정되었다.
어제 동해에 내려갔다 잠시 짬을
내 삼척의 '죽서루'에 다녀 왔다.
처서도 지난 절기에
죽서루와 오십천을 돌며
초가을 훈풍으로 콧바람 쐬니
기분 만땅!!
동해시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내려오다가 삼척항 입구를 지나 400m 가면 삼척교가 나온다. 삼척교를 건너기 전에 우회전하여 2km정도 가면 왼쪽에 죽서루가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의 아름다운 경관은 관동팔경의 한 곳이며, 삼척의 명기 죽죽선(竹竹仙)과 민족의 대서사시 <제왕운기>를 쓴 이승휴와의 사랑 이야기가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동인거사집(動安居士集)>에 의하면, 1266년(고려 원종 7)에 이승휴(李承休)가 안집사(安集使) 진자후(陣子侯)와 같이 서루(西樓)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것을 근거로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척시 서쪽 천리 절벽이 맑은 강을 위압하듯 다가섰는데, 그 위에 자리 잡은 누각이 죽서루(竹西樓)이다. 죽서루에 올라가 난간에 의지하면 사람은 공중에 떠 있고 강물은 아래에 있어 파란 물빛에 사람의 그림자가 거꾸로 잠긴다. 물 속 고기떼는 백으로 천으로 무리무리 오르락내리락 돌아가고 돌아오는 발랄한 재롱을 부린다. 가까이는 듬성듬성 마을 집이 있어 나분히 뜬 연기가 처마 밖에 감돌며, 멀리는 뭇 산이 오라는 듯 가뭇가뭇 어렴풋이 보이니 누대의 풍경이 실로 관동의 으뜸이다”(박종, 「동경 기행」, 『조선고전문학선집』 19, 1991년, 민족출판사).
오십천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 제일 큰 누정이며, 가장 오래 된 건물이다. 유일하게 바다에 접하지 않고 내륙에 들어와 앉은 것도 색다르다. 그만큼 오십천의 절경이 바다 못지않다는 말이 아닐까?죽서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규모이며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이고 있다. 1층에는 길이가 모두 다른 17개의 기둥을 세웠는데, 그중 8개는 다듬은 주춧돌 위에 세우고 나머지 9개는 자연석 위에 세웠다. 그 위의 누대에는 20개의 기둥이 있다
죽서루
관동팔경 중
유일하게 맑은 강을 끼고 있는 누대로,
관동팔경에 세워진 정자와 누대 중
가장 크고 오래 되었다.
기둥 사이는 벽이나 창호문 없이 모두 개방되어 있다. 누대는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공포에서는 익공계와 다포계를 혼용하였다. 가운데 5칸 내부는 기둥이 없는 통칸이고 양측칸의 기둥 배열은 일정하지가 않다. 초기 정면 5칸이었던 것을 중건 때 양쪽으로 1칸씩 늘리면서 개량한 복합 형태가 아닌가 하는 견해와, 처음부터 의도한 대로 만들어진 건물이라는 설이 팽팽하다. 후자의 핵심은 7칸으로 증축한 것이라면 5칸의 구조를 허물고 7칸으로 연장하는 것이 일반적인지라, 완연히 다르다는 것은 오히려 동시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죽서루는 이 같은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양식에 구애받지 않고 천진하고 자연스럽게 지어진 우리 건축의 자랑이라 하겠다. 보물 제213호로 지정돼 있다.
죽서루 내부
벽이 없이 탁 트여 있어
자연스럽게 밖을 바라볼 수 있으며
내부의 공간이 넓어 시원스럽다.
죽서루에 나들이 오신 분들의
뒷모습이 평화롭다.
1403년(태종 3)에 부사 김효손(金孝孫)이 옛터에 중건한 이후, 조선 전대에 걸쳐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최근에는 1960년과 1962년에 기와를 갈고 보수를 하였으며, 1982년에 죽서루 경내를 3,813평으로 확장하고 담장과 평상문 등을 새로 축조하고 죽서루를 개수 및 번와하였다.
죽서루란 이름은 루(樓) 동쪽에 죽림이 있었고 죽림 속에 죽장사(竹藏寺)가 있었다 하며, 또한 그 동편에 죽죽선녀(竹竹仙女)가 있었다 하여 지어졌다고 전해 온다. 전면의 ‘죽서루(竹西樓)’와 ‘관동제일루(關東第一縷)’의 제액(題額)은 1711년(숙종 41) 부사 이성조(李聖肇)의 글씨이고, 루안에 있는 ‘제일계정(第一溪亭)’이란 글씨는 1662년(현종 3) 부사 허목(許穆)의 것이다. 누대 안에는 수많은 현판이 걸려 있는데, ‘제일계정’(第一溪亭)은 현종 3년(1662) 허목의 글씨이며,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와 ‘죽서루’는 조선 숙종 때 이곳 부사였던 이성조의 글씨이다. 숙종의 어제시(御製詩)와 율곡의 시도 걸려 있다.
죽서루 측면
자연석의 성질을 그대로 살린 돌 위에
길이가 모두 다른 17개의 기둥을 세웠다.
그러나 막상 건물의 우수함과
독특함에 마음을 주지 못한다면
죽서루 건물만 달랑 있는 이곳에
낸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날는지 모른다.
그러나 죽서루는 오십천변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라.
오십천 건너 맞은편에서 절벽 위에 솟은
죽서루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특히 단풍 때를 맞추어 가면 좋다.
여름이면 죽서루 옆의
나무가 무성해 누대를 가리고,
겨울에는 너무 삭막하기 때문이다.
고려 충렬왕 1년(1275) 이승휴가 벼슬을 버리고 두타산에 숨어 지낼 때 죽서루에 올랐다고 하니 창건 시기는 적어도 그때, 또는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태종 3년(1403)에 삼척 부사로 재임한 김효선이 한 차례 중건하였으며, 그 뒤에도 여러 번 중건되었다.이 누각을 세울 당시 동쪽에 죽장사(竹藏寺) 또는 죽죽선(竹竹仙)이라는 이름 난 기생이 살던 집이 있어, 이름을 ‘죽서루’(서쪽에 지은 누대)라 하였다고 한다.
관동팔경 가운데 유일하게 강변에 있으며 가장 큰 누정인 죽서루라는 이름이 생긴 유래는 두 가지 이야기로 전하여져 온다. 하나는 죽서루동쪽에 대나무 밭이 있고 그 대밭 속에 죽장사라는 절이 있어서 죽장사 서쪽에 있는 누각이라 하여 죽서루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죽서루 동쪽에 죽죽선이라는 이름난 기생이 살던 집이 있어서 이 집의 서쪽에 있다는 뜻에서 죽서루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죽서루란 이름은
루(樓) 동쪽에 죽림이 있었고
죽림 속에 죽장사(竹藏寺)가 있었다 하며,
또한 그 동편에 죽죽선녀(竹竹仙女)가
있었다 하여 지어졌다고 전해 온다.
강원도 삼척시와 태백시에 걸쳐 있는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유입하는 하천.
오십천은 강원도 태백시 동북부의 통동과 연화동에 걸쳐 솟아 있는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삼척시의 도계읍·신기면·미로면을 지나고, 삼척시 남부를 동류하여 바다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영동 지방에서는 가장 길며, 예부터 삼척시를 대표하는 하천이다. 하류에는 관동팔경의 제1경인 죽서루가 있으며, 하구에는 척주동해비가 있다. 삼척 시민들의 삶과 문화가 농축되어 있어 삼척시의 젖줄이라 할 수 있다.
삼척의 젖줄 오십천과 죽서루
관동팔경의 하나이자 보물 제213호로 지정된 삼척 죽서루는 오십천의 측방침식으로 형성된 석회암 하식애(河蝕崖)[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생겨난 언덕] 위에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죽서루는 객관 서쪽에 있다. 절벽이 천 길이고, 기이한 바위가 총총 섰다. 그 위에 날아갈 듯 한 누를 지었는데 죽서루라 한다. 아래로 오십천에 임했고, 냇물이 휘돌아서 못을 이루었다. 물이 맑아서 햇빛이 밑바닥까지 통하여 헤엄치는 물고기도 낱낱이 헤아릴 수 있어 영동 절경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1422년(세종 4년)에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유사눌(柳思訥)[1375~1440]은 ‘천길 푸른 석벽 겹겹으로 둘러 있고, 오십 맑은 냇물이 졸졸 흐른다.’라는 시로 오십천과 죽서루를 노래하였다. 고려공민왕 때 강릉 안겸사를 지낸 정추(鄭樞)[1333~1382]와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정구(鄭逑)[1543~1620] 등도 한결같이 오십천과 죽서루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시를 지었다. 단원김홍도(金弘道)[1745~?]도 죽서루의 모습을 ‘죽서루도’에 남겼다. ‘죽서루도’에는 오십천이 갈지자형으로 크게 감돌아가는 절벽이 눈에 띈다
오십천 건너에서 바라본 죽서루
맑은 물이 흐르는 오십천 절벽 위에
죽서루가 사뿐히 올라앉아 있다.
교통, 숙식 등 여행에 필요한 기초 정보
삼척시 성내동에 있다.
삼척항 입구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울진 방향으로 조금 가면,
삼척교 못미처 오른쪽으로
시내로 들어가는 38번 국도가 보인다.
이 길을 따라 태백 쪽으로 2㎞ 가량 가면
오른쪽으로 수협이 보이고,
조금 지나면 왼쪽으로 죽서루 들어가는 길이 있다.
시내 곳곳에 표지판이 잘 설치되어 있으며
시내버스가 큰길 앞까지 수시로 다닌다.
시내 여러 곳에 숙식할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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