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길은
故 김광석이 살았던 대봉동 방천시장
인근 골목에 김광석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조성한 벽화거리이다.
2010년 "방천시장 문전성시 사업"의 하나로
방천시장 골목길에 11월부터 조성하기 시작한
김광석길은 중구청과 11팀 작가들이 참여하였다.
350m 길이의 벽면을 따라 김광석 조형물과
포장마차에서 국수 말아주는 김광석,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김광석 등
골목의 벽마다 김광석의 모습과
그의 노래 가사들이 다양한
모습의 벽화로 그려졌다.
매년 가을에는 방천시장과 동성로 일대에서
"김광석 노래 부르기 경연대회"를 개최하여
故 김광석을 추억하고 있다.
대구 일정 첫째날
'김광석 거리'를 다녀왔다.
거리가 조성된 지 10여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초행이었다.
해마다 그가 떠난 1월에는
그에 대한 추모가 이어지고,
그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거리가 화제가 되는데도
나는 왜 여길 와 보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은걸까?
6.25전쟁과 흥망성쇠를
함께한 방천시장
방천시장은 대구도심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신천과
동서로 달리는 국채보상로가 만나는
수성교 옆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신천제방을 따라 개설된 시장이라 하여
방천시장이라 불렸다.
1945년 해방 후 일본, 만주등지에서 돌아온
이주민들이 호구지책으로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이 방천시장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60년대 방천시장은
싸전과 떡전으로 유명세를 탔고,
한때는 점포 수 1,000개가 넘는
대구의 대표 재래시장중 하나였다.
그러나 도심공동화와 대형마트,
주변 백화점등에 밀려 점점 쇠락해 가던 중
2009년부터 '별의별 별시장 프로젝트',
'문전성시 프로젝트'등을 통해
다시 한 번 중흥을 맞이하고 있다.
<방천시장골목길에 조성된 김광석거리 입구>
언제나 김광석이 머물 집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김광석과 함께하는 공간이며,
다채롭게 마련된 이색적인
체험 공간인 김광석 스토리하우스는
김광석이 남긴 노래, 유품, 콘서트 영상 등으로
그를 추억하고 추모하며 다시 만나는 공간이다.
그의 노래처럼 소박하지만 울림이 있는 곳
공연자료, 자필악보, 일기,
메모, LP음반,미공개 사진..
2016년 김광석의 52번째 생일을 기념해
52대 한정판으로 제작된 명품 '마틴기타'까지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하여
김광석을 재해석한 작업들을 지금
김광석 스토리하우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김광석 스토리 하우스 SINCE 2017
김광석 곁에 우리가 머물 집
문명이 발달해 갈수록
오히려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있어요
그 상처는 반드시 누군가
보듬어 안아야만 해요
제 노래가 힘겨운 삶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비상구가 되었으면 해요
- 1995년 샘터 9월호 김광석 인터뷰 중에서 -
시간 지날수록
새록새록 살아나는 사람
김광석... 가끔씩 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는 참 좋은 가수였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글쎄, 그의 살아생전과 사후의 평가가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사람들 가슴에서
살아나는 가수인 듯하다.
대구광역시 중구에서 굳이 방천시장 한쪽에
그를 기리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김광석길)'을
조성한 것도 단순히 관광자원화 같은
경제적 이유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김광석 길은
대구 도심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신천(新川)과 수성교 옆 방천시장
사이에 끼어 있는 좁고 어두운 골목길이다.
벤치에 앉아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김광석의 동상이 있는 입구로부터
송죽미용실까지 350m 길이의
길 왼쪽은 신천 제방길의 옹벽이고,
여기 김광석과 관련한 온갖 기억들이
벽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애당초 제방 도로 아래 푹 꺼진
어두운 골목길에 지나지 않았던
김광석 길이 새롭게 태어난 것은
김광석이 대봉동 출신이라는
사실에 착안한 방천시장의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통해서였다.
김광석은 1984년,
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하였으며
<노찾사 1집>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그룹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뒤에도
통키타 가수로 큰 인기를 누렸다.
대표곡으로는 '사랑했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곳',
'서른 즈음에', '그날들', '이등병의 편지',
'먼지가 되어' 등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김광석을
'철학자'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그의 노래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삶과
사랑의 이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고작 우리 나이로
서른둘에 세상을 떠났다.
유서도 없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한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감해 버렸다.
영화 속에서 북한군 병사조차
안타까워했을 만큼 그의 요절은
덧없는 것이었다.
“인생의 길목 길목에
서 있는 가수가 김광석이다.” – 박학기
“김광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우리는 그가 있어서 80년대를 버텨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박찬욱
‘가객’, 혹은 ‘음유시인’으로 불리면서
그에 대한 헌사가 넘치는 것도
그의 음악이 이른바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네 삶의 고비마다
자신의 노래로 사람들을 위무했다.
짝사랑하는 이에겐 ‘사랑했지만’,
입대할 때는 ‘이등병의 편지’,
헤어질 때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노래했던 것이다.
서른 살을 맞는 이에겐 ‘서른 즈음에’로,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할 때는 ‘사랑이라는 이유로’,
좌절의 고통을 겪는 이들에겐 ‘일어나’,
인생의 황혼기에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같은
짙은 서정의 노래로 그는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졌다.(<나무위키> 참조)
그의 노래는 대부분
좋은 울림을 갖고 있다.
그 울림이 듣는 사람의
마음의 현(弦)을 건드리게 되면서
둘은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골목길에서 대중들을 만나는 김광석
그가 떠난지 11년 뒤인 2007년에
그가 부른 노래 '서른 즈음에'가
음악평론가들에게서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되었다.
이듬해 그이 12주기에는
추모 콘서트와 함께
대학로의 학전 블루 소극장에
그의 노래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그가 유년을 보낸 방천시장 골목길에서
그는 날마다 대중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추위가 매서웠지만 휴일인지라 김광석길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천천히 골목길을 걸어가면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서 모두가 그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가수는 그렇게 대중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김광석 추모판에
김광석 길 방문소감
한줄씩 남기고 가자.
그의 노래는 현실의 부조리와 부패를 건드리는
리얼리즘 경향이 없었음에도 일각에서
비판적 성향의 포크의 계승자로 일컬었다.
그것은 아마도 포크의 부재 시대에
혈혈단신으로(실제로 활동하는 포크 가수는 많았지만,
댄스 시대의 대중들에게 포크는 무시 당했다)
포크를 사수했기에, 그리고 통키타와 하모니카라는
단출한 구성의 포크 정통을 움켜쥐고 갔기 때문이다.
‘나의 노래’에서 말하듯이
노래는 김광석의 힘이자 삶이었지만,
1996년 1월 6일 급작스런 죽음과 함께
음악인생은 서른둘로 끝났다.
하지만 죽고 나서도
그의 음악중력은 요지부동이었고,
어쩌면 생전보다 더 승격된
레전드로 거듭났다.
특히 이병헌, 송강호, 이영애가 주연한
박찬욱 감독의 2000년 영화 '공동구역 JSA'에서
그의 ‘이등병의 편지’와 ‘부치지 않은 편지’가
주요 장면에 흘러나와 팬들의 가슴을
울린 것이 계기가 되었다.
영화에서 북한군 송강호의 대사는
섬뜩하면서도 깊은 공감을 불러냈다.
김광석의 보컬은 파워풀하며
동시에 애잔함이 흐른다.
작고 왜소한 체구로는
믿을 수 없는 성량이다.
대부분 가수는 히트곡 중심으로 기억되지만
김광석의 노래들은 삶의 과정에서 겪는
감정의 파편들과 섞이면서
듣는 사람마다 자신만의
레퍼토리로 간직된다.
그래서 비록 유명하지 않은 곡일지라도
애창곡으로 불리운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꽃',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말하지 못한 내 사랑',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등이
예가 될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는 슬럼프가 없다.
어떤 트렌드가 솟아나고
어떤 새로운 음악이 판을 쳐도
인간적 숨결이 흐르기에 대중은
그의 노래를 지속적으로 소환한다.
1992년 그의 세 번째 앨범에서
사랑받았던 곡 '나의 노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전국에 회오리를 일으키던 때에 나왔다.
초강풍에 밀려 웬만한 노래들은
먼지처럼 다 흩어져가고 있을 때도
'나의 노래'는 라디오에서 살아남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아무도 뵈지 않는 암흑 속에서
조그만 읊조림은 커다란 빛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
[나의 노래]
누가 불렀어도 김광석의 소리로 넘어가면
김광석의 노래가 되어 버린다.
'이등병의 편지'는 작곡자 김현성도 부르고,
김광석보다 윤도현이 먼저 불렀다.
하지만 종국에 소유권은 김광석으로 넘어갔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도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이
독일여행에서 만난 노부부에 영감을 받아
곡을 쓰고 부른 곡이지만 이제는
대부분 김광석의 노래로 기억한다.
자신이 썼든 남의 곡이든
꾸며낸 상상이나 허구가 아닌
자신의 절박하고 순수한 느낌을 실어
담談 처럼 풀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솔직하고
절절한 고백과 토로처럼 들린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등병과
서른 살 젊음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그 감흥을 가슴속 깊이 저장한다.
어떤 상황이 닥치면
그들은 김광석 노래를 들으며
가슴속에 깊이 묻어 놓은
한 가닥을 꺼내어
슬픔과 즐거움을 입하는 것이다.
김광석은 요즘 노래와
가수들과도 가장 큰 대조를 이룬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번쩍하는 차림이 일절 없이
오로지 통키타와 하모니카만을
가지고 노래하는 것이나,
결코 자기 얘기일 수가 없는
아이돌 그룹의 허한 수다와는정반대로
나직한 읊조림으로도 충분하다.
어쩌면 순수가
완전히 실종된 시대라서
더욱 김광석의 노래가 실감나게
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2010년부터 간헐적이기는 하지만
전국 순회로 김광석 추모콘서트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관객의 숫자와 무관하게
현장은 감동의 물결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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