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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나&떼굴이의 걷기운동

경주 명활성입구서~ 진평왕릉산책!2020.7/3일

by 홍나와 떼굴이 2020.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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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47호,

둘레 약6km.

축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 <실성왕기>에

405년(실성왕 4)왜병이 명활산성을 

공격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므로

그 이전인 것만은 확실하다.

축성방법 역시 다음지 않은 돌을

사용한 신라 초기의 방식이다.

즉,

왜의 침략이 극심한 때를 전후하여,

왜적침입 대비목적으로

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431년(눌지왕 15)에는

왜적이 성을 포위, 점령하려 하였고, 

또 473년(자비왕 16)7월 이 산성을 개수하여,

475년 정월에 왕이 성에 이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져, 자연석을 깨트려 가공 없이

자취만 몇 군데서 볼 수 있는데,

이 축조는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554년(진흥왕15)에 개축한 것으로 추측된다.

서쪽의 선도산성, 남쪽의 남산성과 함께,

당시 수도 경주를 방어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오늘 아침에 걸었던 코스 소개해본다.

 

 

 

 

 

 

 

 

 

 

 

 

 

 

 

 

 

 

 

 

 

 

 

 

 

 

 

 

 

 

 

 

 

 

진평왕릉묘는 1969년

사적 제180호로 지정되었다.

보호구역 4만 3645㎡.

631년경 조성.

구황동 3층석탑의 동쪽,

넓은 평야 한가운데에 있다.

그 동쪽에 명활산,

남쪽에 보문사터가 있으며,

서쪽에는 남산이 솟아 있다.

 

표식의물이 없는 밑둘레 약 10m, 

높이 약 7m의 원형 토분으로,

주위에는 몇 그루의 나무만

서 있을 뿐이다.

 

진평왕릉이라고 구전되어 왔는데,

<삼국사기>에 적혀 있는 

진평왕의 장지인 한지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그 규모로 미루어보아

왕릉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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