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해
스스로를 오랫동안 속일 수 없음을
세상은 언제나 확인시켜 준다.
자신이 무엇을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가를
세상이 금방 드러나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도전적인 일들이 일어날 때
사람들과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당신이 자신을 어느 정도 깊이 알고
있는가를 가장 잘 보여 준다.
자신에 대한 시각이 좁고
제한되어 있으며 자기중심적일수록,
당신은 타인에 대해서도 자기중심적이고
무의식적인 부분에만 눈이 가고
거기에 더 반응한다.
상대방의 '잘못', 혹은 더 정확히 말하면
잘못이라고 당신이 해석하는 부분을
상대방 그 자체로 본다.
즉 상대방의 에고만을 보고
그렇게 해서 자신의 에고를 강화한다.
그 사람 안의 에고를 '뚫고'
그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에고 '그 자체'를 본다.
그러면 에고를 보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당신 안의 에고다.
-에크하르트톨레
매우 무의식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안에 투영된 모습을
통해 자신의 에고를 경험한다.
상대방 안의 무엇인가에 반응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같은 것이 있기 때문임을.
그리고 때로는
자신 안에만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자기 자신의 에고가 보인다.
이 단계에 오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것을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자신을 피해자로
보는 것을 중단하게 된다.
당신은 에고가 아니다.
그러므로 자신 안의 에고를
알아차렸다고 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이
누구가 아닌가를 아는 것을
통해서 진정으로 자신을
아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제거된다.
-에크하르트톨레
누구도 당신이
누구인가를 가르쳐 줄 수 없다.
누군가가 가르쳐 주는 것은
개념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신을 변화시킬 힘이 없다
'나는 누구인가'는
믿음이 필요하지 않다.
사실 모든 믿음은
어느 것이든 장애물이다.
'나는 누구인가'는 심지어
깨달음조차 요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은이미
당신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깨달음 없이는
'진정한 나'는 세상을 향해
빛을 발하지 않고
묻혀 있는 상태가 된다.
물론 그 묻힌 장소가
'진정한 나'가 있는 곳이다.
가난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사실은 1억 달러의 예금을
가지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언제까지나 막대한 부를 잠재
가능성으로만 두는 것과 같다.
-에크하르트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