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과 대립은 에고가 스스로를 키우기 위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대체로 사람들의 감정 표현은 이것저것에 대해 불평하고 대립하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틀린 쪽'이 되고 나는 '옳은 쪽'이 된다. '옳은 쪽'이 된 나는 우월감을 느낀다. 우월감을 통해 나의 에고는 더욱 커진다. 실제로는 내가 에고라고 착각하고 있는 그것이 커질 뿐이다.
내면에서 그런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머릿속에서 불평하는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는가?
에고가 지배하는 자아상은 대립을 요구한다. 에고는 자신이 홀로 분리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저것과 대립하여 싸움으로써 스스로를 키운다. 또한 이런 것은 '나'인데 저런 것은 '내가 아님'을 늘 증명하려 한다.
부족이나 국가, 종교단체 역시 적의 존재로 집단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믿지 않는 자'가 없다면 어찌 '믿는 자'가 있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을 대할 때 미묘한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끼는 나를 감지할 수 있는가? 그때 나는 비교를 통해 살아가는 에고를 바로보고 있는 것이다.
-에크하르트 톨레-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남이 나보다 더 많이 알 때, 남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때, 스스로 초라해졌다고 느끼는 에고의 부수적으로 따르는 것이 질투이다. 에고는 비교에서 정체성을 얻고 '더 많이'를 양식으로 먹고 산다. 에고는 무엇이든 붙잡는다. 하지만 모든 수단이 다 실패했을 때조차도 에고는 여전히 커질 수 있다. 삶이 자신에게만 불공평했다든지 심한 병에 걸렸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있으니까.
나의 자아상을 뒷받침하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나도 소설 한 편을 썼는가?
자신을 우주의 나머지 것들과 분리되어 사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에고는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서 분리 상태를 계속 유지시켜야 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반대하고 저항하고 제외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 '남'에 대립하는 '나'가 존재하고 '남들'과 대립하는 '우리들'이 존재한다.
에고는 늘 사물이나 사람과 대립해야 한다. 당신이 끝없이 평화와 기쁨과 사랑을 찾아 헤매지만 그것들을 찾아도 잠깐밖에 참아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말로는 행복을 원한다고 하지만 실은 불행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행의 궁극적 원인은 주변환경이 아니라 마음의 습관이다.
과거에 했던 일 또는 하지 못했던 일 때문에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때 당신의 의식수준에 맞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실은 무의식 수준에 맞게 행동했다는 것이 좀더 정확할 것이다. 당신에게 좀더 맑은 마음이 있었다면 순수의식이 있었다면, 행동이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죄의식 역시 에고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이용하는 방법이다. 에고에게는 자신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과거에 했거나 하지 못했던 일들은 실은 모두 인류의 무의식이 발현된 것이다. 하지만 에고는 그것을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렇게 했어'. 그로 인해 '나는 나쁜 사람'이라는 자아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행한 폭력과 잔인한 파괴 행위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서글프게도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모두 저주받아 마땅한가? 모두 유죄인가? 그렇지 않다면 그런 행위는 그저 무의식의 발현일 뿐이며, 인류가 이제 정신적으로 성장하면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진화의 단계에 불과할 뿐인가? 예수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옵니다'라고 한 말은 당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고 더 낫게 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겠다는 자아성찰적 목표를 세운다면 비록 목적을 달성한다 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목표를 정하라.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알라.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서 무언가 생긴다면 그것은 바로 이 순간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어떤 행위든 매순간 그것 자체로 만족스럽다. 나는 더 이상 지금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오직 에고만이 그렇게 한다.
'내가 없으면 문제도 없다'. 불교의 깊은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어느 스님의 답변이다.
-에크하르트 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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