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생각 없는 순수의식'이 이미 자연스럽게 드러났는데도 그것을 간과해버렸을 수도 있다. 아마도 손을 사용하여 무슨 일을 하거나 방안을 돌아다니거나 공항 카운터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온전히 거기 존재했을 수도 있다. 늘 시끄럽던 마음속은 고요해지고 맑은 마음이 자리했을 수 있다. 아마도 그저 하늘을 바라보거나 다른 이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 마음속에 아무런 판단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고 놀랐을 수도 있다. 나의 지각작용은 생각에 의해 조금도 흐려지지 않고 거울처럼 명료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하는 마음에서 이런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늘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 생각이 오래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온전히 존재했던 순간이 이미 내 삶 속에 있었다는 것을 지나쳤을 수도 있다.
실은 그 순간이 무엇보다 가장 중대하다.
생각에서 맑은 마음으로의 전환이 시작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에크하르트 톨레-
'모른다'는 것을 마음 편히 받아들여라. 그러면 생각하는 마음을 넘어서 저편으로 갈 수 있다. 마음은 항상 주어진 것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결론을 내리려 한다. 모른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모른다는 사실을 마음 편히 수용할 때 이미 당신은 생각을 넘어선 것이다. 그때 개념적 사고를 벗어난 깊은 앎이 당신 앞에 나타난다.
창조적인 미술작업, 운동, 춤, 교육, 상담의 달인들은 생각을 더 이상 쓰지 않거나 쓴다 해도 주인역할은 하지 않는다. 나보다 훨씬 더 큰 힘과 지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나와 하나인 지혜가 주인이 된다. 이제는 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고심하지 않아도 된다. 바른 행동은 자연스럽게 저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것을 주관하는 것은 '나'가 아니다. 삶의 달인은 지배하지 않는다. 그저 광대한 순수의식에 삶의 중심을 맞춰두고 그것이 말하고 행동하고 일하도록 맡길 뿐이다.
위험이 닥쳤을 때는 순간적으로 생각이 멈춘다. 그때 지금 여기에 존재하며 온전히 깨어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맛보아라.
진리는 생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 모든 것을 다 포용한다. 이 세상 어떤 생각도 그 안에 진리를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진리를 가리킬 수는 있다. 예를 들면 '만물은 본래 하나이다' 라는 말은 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진리 그 자체가 아니다. 이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내면 깊은 곳에 그 말이 가리키는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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