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보면 지금 이 순간은 그저 수많은 순간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삶의 하루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는 수천 개의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좀더 깊이 들여다보라. 지금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한 순간밖에 없지 않은가? 삶은 언제나 '이 순간'이 아니던가?
이 한 순간. 즉 지금이 내가 도망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며 나의 삶에 변함없이 존재하는 오직 하나이다. 무슨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나의 삶이 얼마나 많이 변한다 하더라도 분명한 한 가지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면 지금 이 순간을 두 팔을 벌려 맞아들이고 친구로 삼는 게 어떠한가?
지금 이 순간과 친구가 될 때 나는 어디에 있든 편안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속에서 편안하지 않다면 나는 어디를 가든 마음속에 불안이라는 짐 보따리를 지고 간다.
지금 이 순간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그러니 그냥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
삶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는 것은 생각이 만들어낸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착각이다. 과거와 미래는 생각의 형태이며 정신적으로 추상적인 개념이다. 과거는 오직 지금 현재에서만 기억될 수 있다.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것은 그때에도 '지금' 일어났던 사건이다. 미래가 다가왔을 때는 이미 지금이 된다. 그러므로 진정 존재하는 것, 지금 존재하는 유일한 것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 전념하는 것은 삶에 필요한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이차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대하면 훨씬 여유가 생긴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금밖에 없으므로 나는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거야'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에 우선 순위를 두고 지금 이 순간을 적이 아닌 친구로 만들라는 뜻이다. 지금에 감사하고 지금에 경의를 표하라. 지금이 삶의 근본이 되고 중요한 구심점이 될 때 삶은 여유롭게 풀리기 시작한다.
-에크하르트 톨레-
설거지한 접시를 치우고 사업 전략을 세우고 여행을 계획할 때 무엇이 더 중요한가? 행위 자체인가. 아니면 행위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결과인가? 지금 이 순간인가. 아니면 미래 어떤 순간인가?
당신은 지금 이 순간을 싸워 이겨야 할 장애물처럼 대하는가? 아니면 이 순간보다 좀더 중요한 미래의 순간이 있어 거기 도달해야 한다고 느끼는가?
사람들은 거의 다 그렇게 산다. 하지만 미래는 현재로서가 아니면 우리에게 다가올 수 없으므로 그런 삶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런 삶의 밑바닥에는 끊임없이 불안과 긴장, 불안이 출렁인다. 그것은 삶을 존중하는 일이 아니다. 삶은 언제나 지금에 있으며 지금이 아닌 경우는 절대 없기 때문이다.
몸속에 흐르는 생명의 느낌을 만끽하라. 그것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 닻을 내려라.
지금 이 순간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삶에 대한 책임도 회피하는 것이다. 삶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을 책임진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그러함'에 마음으로 반대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지금과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다. 삶과 조화를 이루겠다는 뜻이다.
지금이 지금의 모습인 것은 그 밖에 다른 모습으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자들은 늘 알고 있던 진리였지만 최근 물리학자들이 과학적으로 밝혀낸 것이 있다. 이 세상에서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사물이나 사건은 없다는 것이다. 겉모습 밑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만물은 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개체는 지금 이 순간이 취하는 특정한 형태를 준 우주적 전체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하는 순간 나는 생명의 지혜와 힘과 조화를 이룬다. 그때 비로소 나는 이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일도 할 수 있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매우 혁신적인 정신 수행이 있다. 바로 지금 일어나는 것을 무엇이든 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안에서든 밖에서든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 전념할 때 나는 생생히 깨어있음을 자각한다.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생각의 꿈에서.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꿈에서 막 깨어난 것이다. 그렇게 명료하고 그렇게 단순할 수가 없다. 문제가 생길 여지도 없다. 오직 있는 그대로의 이 순간이 있을 뿐.
마음을 가다듬고 지금 이 순간으로 들어서는 순간, 삶이 성스러움을 깨닫는다. 지금에 머무를 때 내가 인식하는 모든 것에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다. 지금 이 순간의 품 안에 더욱 많이 머물수록 삶의 소박하면서도 깊은 기쁨과 모든 생명의 성스러움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대체로 '지금'을 '지금 일어나는 일'과 혼동한다. '지금'은 '지금 일어나는 일'보다 더 깊은 차원에 있다. '지금'은 그것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지금 일어나는 일'은 '지금'에 담긴 내용물이다. '지금 이 순간'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내용물보다 더 깊다.
지금으로 한발 들어설 때 나는 마음속에 있는 내용물에서 한발 걸어나온 것이다. 멈출 줄 모르는 생각의 흐름도 조금은 느려진다. 이제 생각은 나의 모든 관심을 다 앗아가지는 않는다.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생각과 생각 사이에 공백이 생긴다. 드넓음과 고요함. 나는 내가 '나의 생각'보다 얼마나 더 넓고 깊은 존재인지 깨닫기 시작한다.
생각, 감정, 지각을 비롯해 체험하는 모든 것이 다 내삶의 내용물이 된다. '나의 삶'에서 나는 자아상을 얻고, '나의 삶'은 내용물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는 가장 확실한 사실을 계속 간과한다. 그것은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나의 실체'는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
즉 삶의 내용물과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의 실체는 지금 이 순간과 하나이다. 그것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어리든 늙었든, 건강하든 병들었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나의 실체는 그리고 지금이라는 공간은 나의 가장 깊은 곳에 변함없이 존재한다. 내용물을 나의 실체로 착각하는 바람에 나는 나의 실체와 지금을 삶의 내용물을 통해서만 아주 희미하게 간접적으로 느낀다. 다시 말해서 나의 자아상은 환경과 사고의 흐름과 세상의 많은 일들로 인해 모호해지고, 지금 이 순간은 시간에 의해 모호해진다.
그렇게 나는 생명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잊어버리고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다. 인간이 본연의 자신을 잊어버릴 때 혼란, 분노, 우울, 폭력, 대립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기억해내고 집으로 돌아오기는 또 얼마나 쉬운가.
나의 생각과 감정과 지각과 경험은 내가 아니다. 내 삶의 내용물은 내가 아니다. 나는 생명이다. 나는 만물이 생성되는 공간이다. 나는 순수의식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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