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을 꿈꾼 태종무열왕
경주를 여행하다 보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왕,
바로 태종무열왕이다.
진골출신 최초로 왕위에 올라
신라의 제29대 왕이 되었다.
우리에게 김춘추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태종무열왕은
사교적이었으며
말솜씨가 뛰어났고
외교에도 능하여
당나라와의 교섭을 통하여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다.
태종무열왕은 살아생전
신라의 주요 요충지였던 대야성에서
사위와 딸을 잃은 아픔도 겪었지만
군사제도를 강화하고
관료제를 정비하는 등
탄탄한 중앙집권체제
국가로서의 면모를 다져,
후에 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딸과 함께 방문하고 돌아온
태종무열왕릉비는
오랜 역사 속에 흐르는
문화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고대의 위엄과 위대한 지도자의
흔적이 담긴 비의 옆에서
우리는 감격과 존경의
느낌을 함께했다.
무열왕릉비는 그 특별함으로
전통과 역사의 가치를
재조명하게 해 주었고,
모두를 한꺼번에 만족시켜 주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함께 돌아보자.
경주 무열왕릉은
신라 제29대 태종(太宗)
무열왕(재위 654∼661,
김춘추)의 능이다.
경주 북서쪽에 있는
선도산(仙桃山)에서
남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해 있다.
김춘추는 신라 중대(中代)의
첫 진골(眞骨) 출신 왕으로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병합하고
통일 대업의 기반을 닦았으나
통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능은 밑둘레 114m,
높이 8,7m로
비교적 큰 편이며
능 아래쪽은
자연석을 쌓고
드문드문
큰 돌로 받혔으나
지금은 흙 속에
묻혀 있다.
동쪽에 비석을 세웠던
돌거북 받침돌과
머릿돌이 남아있는데,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金仁問)이 쓴
''태종무열대왕지비
(太宗武烈大王之碑)''
라는 글씨가
돋을새김 되어 있어
이곳이 무열왕의
능임을 알 수 있다.
입장료를 내고
매표 후 입장해야 한다.
무열왕릉비 입구 왼쪽으로는
무열왕릉 영상관이 있었으나
에어컨이 되지 않아
찜통이라 들어갔다
보지 못하고
바로 나왔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국보 제25호 무열왕릉비
경주 무열왕릉에 위치한
무열왕릉비는 국보 제25호이며
비석으로는 동양최고의 아름다움을
인정받고 있는 작품으로
현재 비신은 사라지고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
안타까움으로 남아있다.
통일신라시대 대부분의 비들은
받침돌을 거북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머릿돌을 장식하는
용의 형상은 사실적이다 못해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자아내며
받침돌인 거북문양 역시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믿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여
생동감이 있다.
이렇듯 신라시대의 뛰어난
조각기술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무령왕릉비는
현재 소중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의 아래에는 귀부를 놓고
위에는 이수를 얹은 형식은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이 비의 조각수법은
독창적이다.
귀부의 머리는
거북모양으로
목은 높이 쳐들고
발은 기운차게 뻗고 있어
전체는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과감한 기상을 보여주면서도
표정은 과격하지 않고
오히려 명랑하다.
비 좌(碑座)는
연꽃으로 이루어져 있고
귀갑은 4중의 육각형 귀갑문이
조각적인 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비석의 머리인 이수는
비록 두 조각으로 쪼개진 상태지만
보존상태는 양호하여 귀부 못지않은
뛰어난 조각 솜씨를 여전히
잘 보여주고 있다.
총 6마리의 용이
3마리씩 어지럽게 뒤엉켜서
이수의 앞뒤로
여의주를 받들고 있는데,
서로 얽혀 있는 형상을 비롯해서
아주 생동감 있고
역동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거북이나 용이나
각자 자기식대로 생기가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서로
조화되어 있어서
완전한 짜임새를
보여준다고 평가된다.
한편, 이수는 조각의 기법이
뛰어나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나
무덤의 주인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비록 비석의 몸통은 없어졌지만,
천만다행으로 비석의 머릿돌 전면에
'태종무열대왕지비
(太宗武烈大王之碑)'
라는 글자가 남았기에
이 비석이 무열왕의 능비이고,
바로 뒤 능이 태종무열왕릉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높이 2.1m.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릉의 비로소
현재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만 남아 있을 뿐
비신은 소실되었다.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
이 비는 무열왕이 승하한
661년에 건립되었으며,
비문(碑文)은
김인문(金仁問)이
썼다고 하나
정확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걷다 보면 태종무열왕릉 뒤쪽으로는
많은 능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누구의 능들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태종무열왕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가족이나 친척, 노비,
신하들이 함께 잠들어
있는 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곳에서의 여정은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과 함께
무덤 앞에 깃든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
을 하게 해 주었다.
시간을 초월한
전통과 역사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발걸음
이곳을 떠나더라도,
그의 위대한 정신과 흔적은
우리의 마음에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
지난해 폭우에 소실된
능이 흉물스럽게
아직도 방치되어 있어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포스팅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이곳에서의
특별한 여정에
감사의 뜻을 담는다.
태종무열왕의
전통과 역사적인 가치는
우리에게 큰
자부심과 인상을 남기며,
우리는 이 순간을 통해
그의 위대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의 위엄과 역사는 우리에게
큰 영감과 가르침을 전해주었고,
우리의 여행에 특별한
의미를 선사해 주었다.
더 나아가 새로운 여정으로의
동기부여가 되었다.
'홍나의 여행 > 경주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주 화랑의 언덕: 그네에서 명상바위까지, 푸른 잔디밭 위의 피아노 콘서트! (9) | 2023.07.20 |
---|---|
국립경주박물관 탐험: 세계유산의 보고, 역사의 시간여행 (9) | 2023.07.19 |
경주 불국사 방문기: 역사 속에서 솟아나는 세계문화유산의 아름다움 (15) | 2023.07.17 |
경주 감은사지 동.서 3층석탑의 역사적인 가치와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 (10) | 2023.07.16 |
경주 양동마을 방문기: 고즈넉한 분위기가 가득한 경주의 향기! (10) | 2023.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