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부석사는 도지정문화재인 사찰로,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그 뒤 무학대사가 중건하였다. 이 사찰에는 극락전, 요사채, 신검당, 안양루 등이 있으며 불상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하여 관세음보살, 대세지 보살, 지장보살 등 8좌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특히 사찰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들이 왕래하고 있다.
충남 서산시 부석면 부석사로 들어서자 도비산 자락에 아담하게 들어앉은 사찰 풍경이 고즈넉하다. 금강역사가 지키는 금강문 너머로는 시간이 그대로 정지된 듯하다. 한자리에서 모진 풍파를 모두 버틴 거대한 몸통의 느티나무와 벚나무 고목들. 닳고 닳아 윤기가 도는 돌계단, 그리고 가파른 언덕 위에 단아한 모습으로 여행자를 맞는 극락전 지붕에도 수백 년 세월이 켜켜이 쌓여있다. 화려한 단청 하나 없지만 그래서 더 자연을 닮고자 하는 진심이 가슴 깊이 다가온다. 아담한 사찰 도비산 부석사는 조선 시대에는 무학 스님이, 근대에서는 선불교를 중흥시킨 경허, 만공 대선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수행정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서산 해미읍성 축제 참가 후 천년고찰 부석사도 다녀왔다 함께 보자.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즉 사찰 금당 (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천왕문과 마찬가지로 보통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이다. 정면 3칸 중 가운뎃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양쪽 1칸은 바깥쪽 3면을 벽으로 처리하여 안에 금강역사상을 세워 둔다.
금강역사상은 불법을 훼방하려는 세상의 사악한 세력을 경계하고, 사찰로 들어오는 모든 잡신과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소승불교의 《오분율(五分律)》에 따르면 부처가 있는 곳에는 항상 5백의 금강신이 있어 좌우에서 부처를 호위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사찰에서는 불법을 지키는 신으로서 금강역사상을 안치하고 있다.
나라연금강은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하고, 야차신 (夜叉神)의 우두머리인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 (金剛杵)를 쥐고 있다. 금강저는 지혜의 무기이며 번뇌를 부수는 보리심의 상징이다.
흔히 사찰의 삼문이라 하면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不二門)을 말하며, 따라서 금강문을 세우지 않은 사찰도 많다. 금강문이 있는 사찰은 금강문이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하지만, 금강문이 없는 사찰은 천왕문이 대문 역할을 한다. 그래서 사찰에 따라서는 금강문 없이 천왕문에 금강역사를 모시기도 하고, 영광 불갑사(佛甲寺)의 경우처럼 천왕문에 금강역사의 모습을 그려 놓기도 한다.
'구름이 머무는 누각', 이 얼마나 멋진 이름인지..
날씨 좋은 날에 운거루에 오르면 천수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서해바다로 떨어지는 석양을 머금고 있는 곳, 부석사는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서쪽 하늘 저 멀리 천수만을 품은 태안반도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기러기 떼가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서산 부석사이다.
운 거로 옆의 건물은 도비산 다원이다. 요즘 사찰에는 차와 다과를 판매하는 다원이 있는 곳이 많아졌지만, 이곳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운영되어 온 사찰 다원계의 역사와 같은 곳이다. 담당 보살님이 끓여주시는 쌍화차가 일품이다. 시중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분말 형태의 쌍화차가 아니라, 부석사의 한 보살님께서 부석사와 인근에서 재배한 재료로 직접 만드신다고 한다. 떼굴님과 내가 서산 부석사에 가는 이유에는 이 쌍화차도 포함될 것 같다.
아담한 사찰 도비산 부석사는 조선 시대에는 무학 스님이, 근대에서는 선불교를 중흥시킨 경허, 만공 대선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수행정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인중지룡, 그러니까 사람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고 비범한 사람’을 길러내는 곳이라는 목룡장과 지혜의 검을 찾는 곳이라는 심검당 현판은 경허 스님이 쓰신 글이고, 부석사 큰방에 걸려있는 부석사 현판은 만공스님께서 70세에 쓰신 글이라고 한다.
극락보전·무량수전·무량전·보광명전(普光明殿)·아미타전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극락정토신앙이 강하여 내부 구조는 대웅전만큼이나 화려하다.
본존은 서방 극락세계에 살면서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아미타불로, 무량수불 또는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고도 한다. 아미타불의 광명은 끝이 없어 백천억 불국토를 비추고, 수명 또한 한량없이 백천억 겁으로도 헤아릴 수 없다 (無量壽). 그래서 이 부처를 모신 전각을 무량수전이라고 하고 보광명전이라고도 한다. 아미타전은 이 부처의 이름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아미타불의 좌우 협시로는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둔다. 여기서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의 자비를 상징하는 지혜로써 중생을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지혜를 상징하는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널리 비추어 삼도의 고(三道苦)를 없애고 끝없는 힘을 얻게 한다. 지장보살은 중생을 구제하여 극락으로 인도하는데, 한국에서는 고려 및 조선시대에 극락왕생 신앙이 성행하면서 아미타불의 협시로 등장하였다.
불교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므로 산신도 비교적 일찍 불교에 수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나, 산신각이 세워진 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이다. 대개 전각의 뒤쪽에 세우며, 크기는 정면 1칸, 측면 1칸이 보통이다. 산신각 내에는 산신을 그린 탱화를 모시는데 대개 흰 수염, 대머리, 긴 눈썹이 휘날리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손에는 하얀 깃털부채나 파초선, 불로초 등을 들고 있고 주로 봉래산, 영주산, 방장산 등의 상신산을 배경으로 한다.
무·불·선을 아우른 한국의 마애불
산은 한국인에게 생활신앙의 모태였다. 하늘과 가까이 맞닿은 곳으로써, 신이 내려오는 성역으로서 숭앙의 대상이었다. 그런 곳의 암벽에 조각했기에 마애불은 한국인의 원초적인 신앙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부처가 새겨진 바위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바위가 아니며 거북 형태나 남녀 성석(性石)과 함께 자리해 있어서, 산악의 정령이 깃들여 있다고 믿는 특별한 바위에 이름을 쓰거나 치성을 드리던 무속신앙과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애불과 관련된 신화와 전설 또한 무불신앙이 섞여 있음을 보여준다. 때로는 도교의 신선사상과 복합된 양상을 보이기도 하고, 암각화나 거석문화를 통해서도 마애불이 우리나라에 어떤 모습으로 새로 태어났는지를 알 수 있다.
마애불이란 말그대로 바위에 새긴 불상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는 얼추 200여 개가 넘는 마애불이 있고, 대부분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적이 있을 정도로 그 아름다움이나 의미가 남다르다.
불교에서 종교적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소리 내는 일체의 용구를 범음구(梵音具)라고 하는데, 부석사 동종은 범음구 중의 하나이다. 종은 당외(堂外)의 종루에 걸어 놓고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타악기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는 청정한 불사(佛寺)나 범찰(梵刹)에서 사용하는 종을 범종이라고 한다.
부석사 동종에는 타종을 할 수 있는 당좌가 조각되지 않았고, 종신 중간에 걸쳐 긴 명문(銘文)이 별주 되어 있다. 그리고 하대(下帶)에 당초연꽃무늬를 유려하게 새겼는데, 이런 부분은 조선 후기에 많이 조성되었던 종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부석사 동종은 높이가 93㎝로, 원래 금당인 극락전 내에 안치되어 있었는데, 종의 상부가 파손되어 수덕사 근역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용통(甬筒)은 없지만 용뉴를 비롯한 유곽, 보살입상, 주성기 등이 배치된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동종이다. 용뉴 부분에는 여의주를 입에 문 두 마리의 용두를 서로 대칭되게 배치하였는데, 용두는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아울러 용통(甬筒)이 없는 대신 구멍을 뚫어 놓은 부분도 관찰된다.
부석사 동종은 형태와 조각 양식에서 조선 후기 종의 특징이 관찰되고, 특히 동종에 새겨진 명문에서 구체적인 조성 시기를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범종 연구의 중요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건물의 내부는 우물마루에 벽은 석회, 백토, 가는 모래 따위를 섞어 반죽하여 바른 회사벽(灰沙壁)이며, 천장은 연등천장(椽燈天障)으로 서까래 등이 훤히 드러나 있다. 보통 누각은 2층으로 강당으로 쓰이며 1층은 사람이 드나드는데, 부석사 안양루는 1층이며, 안에는 불상이 봉안되어 있고 후면이 막혀 있어 사람이 드나드는 누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현재 부석사 안양루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부석사(浮石寺)이다. 내부에는 후불탱화(後佛幀畫)가 그려져 있고 불좌상과 열반상이 봉안되어 있어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부도는 승려가 입적한 후 유체를 풍장(風葬) 또는 다비하고 나온 유골이나 사리를 수습하여 봉안하기 위한 기념적인 조형물로, 승탑(僧塔)·부도탑(浮屠塔)·석종(石鐘)이라고도 일컫는다.
천년고찰 부석사를 품고 있는 도비산
서산 8경중 하나였던 도비산은 해발 351,5m로 저녁노을이 천수만 바닷물에 돼 비 지어 하늘에 오색노을을 꽃피게 하고, 주위의 구름까지도 주황색으로 채색하여 매우 황홀하고 아름답다. 조선시대에는 정상에 봉수대가 있었으며, 신라고승 의상대사가 선묘낭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문무왕 17년에 지었다는 부석사를 품고 있다.
천년의 시간을 지키며 고요한 숨소리를 내뿜는 부석사, 이곳에서 우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우리 역사의 깊은 흐름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장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천년의 고찰이 전해주는 평온과 깨달음이 오래오래 마음속에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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