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다가오는 모든 체험은 그저 잠시뿐이라는 것.
더불어 세상은 세속적인 가치를 지닌 그 어떤 것도 내게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순응이 가능해진다.
순응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은 이전처럼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에 몰두한다 해도 더 이상 에고가 흔드는 대로 욕망과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 더 이상은 어떤 상황에 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장소에 있어야만 만족하고 행복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불완전하고 무상한 것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기적 같은 일이 생긴다. 불가능한 기대치를 버리는 순간 갑자기 모든 상황과 사람, 모든 장소와 사건이 두루 다 마음에 드는 것이다. 더불어 당신의 마음은 좀더 조화로워지고 좀더 평화로워진다.
지금 이 순간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일 때,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더 이상 싸우지 않을 때 당신의 마음속에는 생각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줄어들고 그만큼 깨어있는 고요함이 늘어난다. 당신의 의식은 백 퍼센트
깨어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 어떤 이름도 붙이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속의 저항을 다 내려놓을 때 생각하는 마음보다 무한히 더 크고 아무런 걸림도 없는 순수의식이 열린다. 이 드넓은 지혜는 당신을 통해서 발현되어 당신의 안과 밖에서 당신을 돕는다. 마음속의 저항을 놓아버릴 때 주변 상황이 좋아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에크하르트 톨레
그렇다면 지금 당신에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행복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그러함(여여)'을 그대로 두어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기서 순응이란 '지금 이 순간'에의 순응을 말한다. 당신의 이야기에 순응하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이야기를 통해 지금 이 순간을 해석하고 그에 따라 삶을 살아왔다.
예를 들어 나에게 어떤 장애가 생겨 걸을 수 없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이 상황은 그저 상황일 뿐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나의 장애를 나름대로 해석하여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나는 결국 이런 꼴이 되고 말았어. 휠체어에 처박힌 신세라니. 너무나 잔인한 삶이야. 인생은 너무나 불공평해. 왜 나만 이런 비참한 꼴을 당해야 해?
'왜 하필 나야?'라고 되묻지 않을 때 순응은 온다.
가장 고통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속에 가장 깊은 선이 감추어져 있다. 모든 재난 속에는 사람의 씨앗이 들어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커다란 상실과 질병을 겪은 사람들. 감옥에 갇혔거나 곧 죽음을 맞이할 사람들이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을 받아들이고 마침내 평화를 얻은 것을 볼 수 있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 찾아온다.
살다보면 어떤 답이나 설명도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이 있다.
삶이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때로는 고통 받는 사람이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도무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내가 답을 모른다는 현실을 완전히 받아들일 때 나는 더 이상 나를 가두고 제한하는 생각을 통해 답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게 된다. 그렇게 현실을 완전히 수용해버리면 더욱 큰 지혜가 나를 통하여 작용할 수 있다. 이제는 생각을 하더라도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더 큰 지혜가 생각 안으로 들어와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순응은 이해하려고 애쓰는 마음을 거두고 모른다는 사실에 편안해지는 일이다.
혹시 당신의 주위에 자신과 남에게 고통을 주고 불행을 전염시키는 것을 즐거움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를 용서하라. 그 사람도 인류가 깨달음으로 가는 대열의 동참자이다. 그가 맡은 역할은 에고에 갇힌 의식을 과장해서 보여주는 것. 순응하지 않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역할이다. 그의 행동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그의 본래 모습은 그렇지 않다.
순응이란 저항이 수용으로 바뀌는 것. '아니오'가 '예'로 바뀌는 것이다.
당신이 순응할 때 이전에 대립과 비판을 일삼던 에고는 이제 대립과 비판을 부드럽게 감싸안는 공간으로 변화한다. 이전에 생각이나 감정처럼 형상을 지닌 것이 나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형상을 여읜 광대한 마음이 나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무엇이든 저항 없이 온전히 수용할 때 평화는 찾아온다.
거기에는 내가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 그래서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까지도 포함된다.
삶을 내버려두어라. 상관하지 말라.
'홍나의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요함의 지혜: 에크하르트 톨레 8. 관계 (0) | 2022.09.07 |
---|---|
고요함의 지혜: 에크하르트 톨레 7. 자연 (0) | 2022.08.28 |
고요함의 지혜: 에크하르트 톨레 6. 수용과 순응 (0) | 2022.08.20 |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7장:에크하르트 톨레 '있음'의 기쁨(The joy of being) (0) | 2022.08.15 |
고요함의 지혜:에크하르트 톨레 5. 나의 참모습 (0) | 2022.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