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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나의 사찰여행

부여 낙화암 고란사 가을에 걷기 좋은 명품산책길

by 홍나와 떼굴이 2021.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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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찬란했던 역사였던 백제. 그 중심에 부여가 있다. 부여의 이야기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가만히 앉아서 듣기에는 너무나 궁금해진다. 실제로 찾아온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산재해 있는 부여는 따뜻한 도시의 느낌과 곳곳에 위치하고 있는 유적지들이 자연의 풍광과 어우러져 있어  여행하면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기는 처음이었다. 충남 부여는 서울에서 2시간여를 달리면 도착하는 곳으로 불교문화를 찬란하게 꽃 피운 천년고도다. 이곳 부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백제제역사유적지구로 아담하면서도 옛 왕도의 품위를 느낄 수 있는 여행지다. 특히 백제 역사 여행의 대표적인 장소로 이곳을 중심으로 익산과 공주를 포함해 여행하기도 한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백제역사유적지구에 대한 관광객들의 발길이 많아지고 있다.

 

부여의 가을에 걷기 좋은 명품산책길로 백제 여인의 넋이 담긴 낙화암과 고란사가는길이 있는데 삼천궁녀의 전설이 깃든 낙화암을 가기 위해서는 구드래 선착장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고란사 선착장을 이용하는 방법과 부소산성 입구 주차장에서 숲길을 따라 낙화암을 도보로 걸어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구드래 선착장을 찾는 것이 편리하다.

 

지난주 우리 일행들은 숲길을 따라 낙화암을 도보로 걸어가는 방법으로 아침 햇살에 자태를 자랑하는 짙은 단풍과 맑은 공기를 만끽하며 약간의 오르막길을 걸어 도착한 낙화암과 고란사까지 다녀왔는데 만추에 걷기 좋은 명품산책길을 따라가 보자.

 

 

 

 

 

※ 낙화암의 유래 ※

 

바위 위에는 백화정(百花亭)이라는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백제고기(百濟古記)에 의하면 부여성 북쪽 모퉁이에 큰 바위가 있어 아래로는 강물에 임하는데, 모든 후궁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차라리 죽을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고 하고, 서로 이끌고 이곳에 와서 강에 빠져 죽었으므로 이 바위를 타사암(墮死巖)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낙화암의 본래 명칭은 타사암이었는데, 뒷날에 와서 후궁이 궁녀로 와전되었고 이후 궁녀를 꽃에 비유하고 이를 미화하여 붙인 이름이 분명하다.

 

이 바위와 관련되어 전해오는 전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용담(勇談)이 많은 영주(英主)였는데, 여러 차례 신라의 여러 고을을 쳐서 천하에 그 성세(聲勢)를 높인 뒤로는 정사는 돌보지 않고 날마다 궁성 남쪽의 망해정(望海亭)에서 궁녀들을 데리고 가무주연(歌舞酒宴)의 향락을 일삼았다. 좌평 성충(成忠)은 이를 근심하고 극력 간(諫)하였으나, 왕은 이 말이 귀에 거슬려 그를 옥에 가두어버렸다. 그러자 그는 마음이 아파서 죽고 말았다. 이러할 때 일찍이 백제의 침략을 받아온 신라는 무열왕 및 김유신(金庾信) 등의 영주와 명신(名臣)이 나타나서 나라의 힘을 크게 길러 복수를 하고자 당나라 군사와 힘을 합하여 백제를 치게 되었다. 이에 백제의 용장 계백(階伯)은 5천의 적은 군사로써 황산(黃山)벌에서 신라 군사와 싸웠으나 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나당연합군의 수많은 군사가 일시에 수륙 양면에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해오자 왕은 그제야 성충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음을 후회하였다. 왕은 하는 수 없이 해질 때를 기다려 왕자 효(孝)를 데리고 웅진성(熊津城)으로 달아나서 싸웠으나 성문은 부서져 열리고 말았다. 수많은 궁녀들이 슬피 울면서 흉악한 적군에게 죽는 것보다 깨끗하게 죽는 것이 옳다 하여 대왕포(大王浦) 물가 높은 바위 위에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사비수 깊은 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이 바위를 낙화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 삼천궁녀의 넋을 기리는 사찰, 고란사 *

낙화암 아래 백마강가 절벽에 자리하고 있는 고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절 뒤 바위 틈에 고란정(皐蘭井)이 있으며, 그 위쪽 바위틈에 고란초(皐蘭草)가 나 있다. 고란사 뒤편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와 고란초의 전설이 유명하며, 백마강을 바라보는 주위경관이 비길데 없이 아름답다.일설에 의하면 이 절은 원래 백제의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 하며, 또 궁중의 내불전(內佛殿)이었다고도 전한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落花岩)에서 져간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8년(고려 현종 19)에 지은 사찰이라고도 한다.

 

* 고란약수와 고란초의 전설 *

백제시대에 임금님은 항상 고란사 뒤편 바위 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애용하여, 매일같이 사람을 보내 약수를 떠오게 하였다. 마침 고란약수터 주변에서만 자라는 기이한 풀이 있어 이름을 '고란초'라 불렀다. 약수를 떠오는 사람들이 고란초의 잎을 하나씩 물동이에 띄워 옴으로써 그것이 고란약수라는 것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백제의 임금님이 약수를 즐겨 마셔, 원기가 왕성하고 위장병은 물론 감기도 안 걸리고 사셨다 한다. 또한, 고란약수를 한 잔 마시면 3년씩 젊어진다는 전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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