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쓰촨 성의 활기찬 도시, 충칭시에 도착한 떼굴님과 여러 공연관계자분들과 함께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이곳의 매력을 깊이 탐험하게 될 특별한 기회를 가지고 있다. 이번 방문은 중국 공연 관계자분의 따뜻한 초청으로 이루어졌으며, 충칭시의 장엄한 경관과 풍부한 문화적 유산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충칭의 심장부에서 펼쳐지는 문화의 물결 속으로 들어와 있는 관계로 이번 주말까지는 블로그 업로드가 없을 예정
충칭시는 중국 시난(西南) 지방에 위치한 중국 4대 직할시 중 하나이다. 면적은 82,403km²로 대한민국 실효 지배 면적의 약 80%이며, 중국의 성급시 중 가장 큰 면적을 자랑한다.[2] 인구는 32,350,000명[3]으로 행정구역상 단일 도시 기준 세계 최대 규모다. 입체적으로 공중에 도로나 도시 철도를 배치하고 고층 건물 옥상에 주차장, 학교 운동장 등 고공 시설을 활용하는 등 초과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공중 도시로도 유명하다.
중국에는 수도 베이징을 시작으로 톈진, 상하이 그리고 충칭까지 4대의 직할시 거대도시가 있다. 이 중 충칭시는 인구가 3,000만 명에 이리고 그 면적은 다른 도시보다 넓은 80,000㎡에 이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80%에 해당하는 넓이다. 충칭시는 그 규모도 거대하지만, 중국 내륙을 대표하는 매우 현대화된 도시이기도 하다.
충칭시는 과거 도시 이름의 한자어를 따와 중경시라고도 불렸는데 그 역사는 기원전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충칭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대 소설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위, 촉, 오, 3개국이 대결하던 중국의 삼국시대 유비가 지배하던 쓰촨 일대 익주로 불리며 촉나라 권역에 속해 있었다.
충칭시는 이후 중국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황하강에서 장강으로 옮겨지면서 크게 발전했다. 장강의 중류에 자리한 충칭은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 물류의 중심가 됐고 크게 번성했다. 충칭은 강을 통한 물자의 이동이 활발했던 중국에서 동서물류의 거점이 됐기 때문이었다.
중국 서부 내륙의 유서깊은 도시 충칭
중국에서 상대적으로 접근이 어려운 서부지역 진출에 있어 충칭은 매우 중요했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쑤저우, 항저우, 사스 등을 항구를 추가 개항하면서 내륙의 충칭까지 포함한 건 일본이 이 지역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충칭이 다시 중국 역사에서 크게 부각된 건 1937년 발발해 1945년 일본의 패망 때까지 이어진 중. 일 전쟁이었다. 이미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 지역을 장악하고 만주국이라는 친일 괴뢰국을 세운 일본은 그들의 중국 침략 야욕을 더 강하게 드러내며 1937년 중국에 대한 전면전을 시작했다.
이에 맞서 중국 장개석 정부는 공산당과 침략자에 맞서기 위해 국공합작을 단행하는 한편, 수도를 내륙 깊숙한 충칭으로 옮겨 항전을 지속했다. 일본은 중국의 거점 도시를 장악하는 한편 당시 중국의 수도였던 난징에서 사상 최악의 전쟁범죄 중 하나인 난징 대학살을 자행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일본은 중 국민들의 항전 의지를 꺾고 전쟁의 주도권을 잡으려 했지만, 오히려 강한 항전 의지만을 더 고취시켰다.
중국 장개석 정부의 끈질긴 항전은 중. 일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끌었고 이에 부담을 느낀 일본은 군수 물자 조달 등을 위해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침공을 단행하며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고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선이 더 크게 확산됐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이런 선택은 진주만 폭격과 함께 미국에 대한 무모한 전면전으로 이어졌고 그들의 패망을 더 빠르게 했다. 그 점에서 중. 일 전쟁에서 중국의 항전은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의 승리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중일전쟁 항전의 도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귀착지
충칭시는 그런 항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다 동시에 중. 일 전쟁을 기점으로 충칭은 임시 수도로서 더 많은 인구가 유입되고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로 더 발전할 수 있었다 또한, 최근에도 충칭은 중국 정부가 크게 관심을 가지고 추진 중인 서부지역 개발과 관련한 중요 도시로 중앙 정부의 큰 지원을 받고 있고 발전 속도를 더하고 있다. 이에 충칭은 중국의 4대 직할시 중 유일하고 서부지역에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충칭의 역사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도 함께 한다. 김구가 주도한 임시정부 한인애국단 소속의 윤봉길의 1932년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를 기점으로 임시정부에 대한 중국 장개석 정부의 인식이 크게 변화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의 장개석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게 된다. 이후 임시정부 장개석 정부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중. 일 전쟁의 발발과 장개석 정부의 충칭으로의 수도 이전 과정에서 임시정부는 함께 이동해야 했고 그 이동은 길고 멀었다. 마침내 1940년 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충칭에서 긴 이동의 마침표를 찍었고 대일 항전의 한 축으로 그 역할을 했다.
충칭 임시정부는 기존의 외교 활동과 함께 광복군을 조직해 중국군과 합동 작전을 전개했고 연합군의 일원으로 버마 전선 등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소식도 충칭에서 들을 수 있었다. 이 점에서 충칭은 우리 현대사에서도 의미가 큰 곳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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