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10:20 옥도항 출발 신안군 하의도 도착, 부드러운 파도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김대중 생가터로 향했다. 이곳은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인 김대중 대통령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는, 역사가 숨 쉬는 곳이다.
목포에서 시작된 일정은 옥도의 푸른 바다를 건너 하의도의 조용한 풍경 속으로 이어졌고, 그 평화로운 아침에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를 따라 걷게 되었다. 오전의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가운데, 대통령의 생가터에 서니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역사적인 순간들이 마음 깊숙이 다가왔다.
이 소중한 방문을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직접 체험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었으며, 이 블로그를 통해 그 감동과 영감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역사의 현장, 김대중 대통령의 생가터를 탐방하는 여정에 동참해 보기 바란다.
하의도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삶과 업적을 되돌아보며 그의 숭고한 정신과 굳건한 의지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1. 김대중대통령이 나고 자란 신안군 하의도(荷衣島)는 ‘하’자가 연꽃이란 뜻이고, ‘의’는 옷으로 싸다는 의미이므로 연꽃으로 감싸준 섬이란 뜻이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형태를 연꽃이 물 위에 떠있는 연화부수형이라고 한다. 지도를 펴놓고 하의도를 보면 주변의 무수한 섬들이 하의도 주변에 떠있다. 신안군은 현재 유인도 76개, 무인도 781개 등 857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 섬들은 화산폭발이나 융기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해수면 상승으로 형성된 것이다. 즉 본래는 육지 지형이었는데 낮은 곳이 침수된 것이다. 그러므로 바닷속은 육지와 섬, 섬과 섬을 연결해 주는 산맥이 있다. 풍수에서는 이를 도수맥(渡水脈)이라고 한다. 맥이 물을 건너간다는 뜻이다.
2. 신안군의 대부분의 섬들은 목포 유달산과 무안 승달산에서 맥이 비롯된다. 하의도의 맥은 승달산에서 지도, 병풍도, 매화도, 당사도, 양태도, 안좌도, 장사도, 상태도, 하태도로 이어져 왔다. 하태도에서 하의도로 건너온 맥이 처음으로 망매산(150m)을 세우고, 여기서 섬 전역으로 산줄기가 뻗어나간다. 이중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어은리, 웅곡리, 대리, 후광리로 이어지는 맥 끝자락에 김대중 대통령 생가가 있다. 생가 뒤의 나지막한 언덕이 망매산에서 이어져 온 맥이다. 이를 통해 무안 승달산의 정기가 이곳까지 전달 된 것이다.
3. 김대중 대통령 생가는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 121에 위치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고향 마을 이름을 평생 아호로 사용했다. 김대중은 1924년 이 터에서 태어나 하의보통학교 3학년 때인 12세까지 살았다. 4학년 때 목포로 이사 가면서 집은 어은리 주민에게 팔렸다. 어은리 주민은 집을 그대로 뜯어서 자기 땅에 옮겨지었다. 생가 터는 마늘밭으로 변했고 그렇게 6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어린소년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됐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4. 마을주민의 대부분인 김해김씨 종친들은 어은리 집을 사들여 생가 터에 원형대로 복원하고 신안군에 기증했다. 한옥은 목재로 맞추기 때문에 원형 복원이 가능하다. 신안군은 대통령의 생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대중은 어린 시절 고향 땅에서 지금처럼 환대를 받지 못했다. 그가 서자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자서전 첫머리에 아버지는 부인이 두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둘째 부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는 서자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을 때다.
5. 김대중 대통령은 생전에 우리민족은 한(恨) 이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한은 슬픔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한을 자신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면 큰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본인 이야기였던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어린 시절 겪었던 차별과 사회적 편견에서 비롯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삶이 곤궁했던 소년이 세계적 인물로 성장한 배경 일부를 생가 터에서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6. 하의도가 세간의 큰 관심을 끌게 된 사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파란과 곡절을 상징하는 '인동초, 김대중'이란 거목을 낳은 고장이라는 것이다. 지난 1992년 대통령 선거 무렵에는 그의 생가 집터가 있는 후광리에 수백명의 국내기자와 외신기자들이 몰려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으며, 김대중 대통령이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생가도 지금은 옛 모습을 찾게 되었다. 1999년에 종친들이 성금을 모으고 대구 노인복지대학노인회에서 120만 원을 모금해 보내오기도 하여 집터만 남아있던 생가의 구조물을 그대로 이용, 어은리마을에 집을 짓고 살던 주민으로부터 다시 집을 사들여, 후광리에 대지 2,466.12m²(746평), 건평 59.5m²(18평)의 목조초가 본체와 창고, 측간으로 구성된 생가를 원형대로 복원(신안군 향토자료 제23호)하여 신안군에 기증하였으며, 군에서는 복원된 김대통령 생가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주변에 화장실 등 기본시설을 갖춰 찾아오는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7. 생가 뒤의 능선은 미인의 눈썹처럼 생겼고, 굽은 듯 생가 터를 안아주고 있다. 좌청룡은 원생가터가 있는 능선으로 북쪽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준다. 우백호는 원을 그리듯 생가를 감싸며 보국을 형성했다. 백호의 산들은 순하지만 그 모양은 반듯반듯하다. 마치 대통령 앞에 장관과 참모들이 도열한 모습이다. 앞의 들판은 본래 염전이었던 만큼 평탄하고 원만하다. 인걸은 지령이라 했으니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배출된 것이다.<출처: 중부일보>
8. 새벽의 목포항을 떠나 옥도를 거쳐 하의도로 이어진 여정 속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생가 방문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역사의 살아있는 숨결을 느끼는 듯했다. 여기, 한국 현대사의 중요 인물이 걸어간 길 위에서 느껴진 고요함과 존경의 무게는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 작은 섬에서 느낀 역사의 존재감과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은 제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블로그를 통해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하의도에서의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게 되어 기쁘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땅에서 우리 모두가 깊은 사색과 감사의 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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