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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나&떼굴이의 걷기운동137

경주 명활성입구서~ 진평왕릉산책!2020.7/3일 사적 제47호, 둘레 약6km. 축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에 405년(실성왕 4)왜병이 명활산성을 공격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므로 그 이전인 것만은 확실하다. 축성방법 역시 다음지 않은 돌을 사용한 신라 초기의 방식이다. 즉, 왜의 침략이 극심한 때를 전후하여, 왜적침입 대비목적으로 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431년(눌지왕 15)에는 왜적이 성을 포위, 점령하려 하였고, 또 473년(자비왕 16)7월 이 산성을 개수하여, 475년 정월에 왕이 성에 이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져, 자연석을 깨트려 가공 없이 자취만 몇 군데서 볼 수 있는데, 이 축조는 의 기록대로 554년(진흥왕15)에 개축한 것으로 추측된다. 서쪽의 선도산성, 남쪽의 남산성과 함께, 당시 수도 경주를 방어하는 데 .. 2020. 7. 3.
포항 송도 솥밭 도시숲길을 걷다! '조선 순종4년(1910), 동양척식회사 소속 오오우치 지로가 농사를 짓고 과자를 팔며 살고 있었는데 1911년 송도 백사장 53여 정보(16만평)를 대여받아 나무를 심기 시작해 울창한 숲을 만들었다. 이 숲은 1929년 어부보안림(魚附保安林)으로 지정됐고 광복 후에 더 많은 나무를 심어서 포항의 대표적 방풍림이 되었다.’ (‘일월향지’ 1967) 포항시민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 켠에 저마다의 추억을 간직했을 송도. 송도는 영일만이라는 동해안 최고의 자연조건 덕분에 명사십리 백사장을 가진 해수욕장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길게 펼쳐진 솔밭으로 인해 포항시민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였다. 포항코모도호텔에서 1박 한 후 아침산책길에 송도솔밭 도시숲길을 걸었다. 처음부터 송도로 불렸던 건 아니었.. 2020. 6. 26.
경주 첨성대의 아침 2020. 6/24일 대릉원 후문에서 시작해 주요 고분을 둘러보고 대릉원 정문으로 나가면 가까운 곳에 첨성대가 있다. 선덕여왕 때 축조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다. 별을 관찰하는 천문대였으니 밤에 보면 얼마나 더 멋질 일인가. 검은 하늘을 수놓는 달 아래, 별자리 아래, 그만큼 빛나는 첨성대가 있다. 태양과 달, 하늘의 움직임을 첨성대 돌 하나하나에 담아냈다.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진 첨성대의 모양은 하늘과 땅을 형상화했다. 첨성대를 만든 365개 내외의 돌은 1년의 날수를 상징하고, 돌단과 꼭대기 정자석 가지 총 29단과 39단이 되는 것은 음력 한 달의 날수를 뜻한다. 관측자가 드나들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가운데 창문을 기준으로 위쪽 12단과 아래쪽 12단은 1년 12달, 24절기를 상징한다. 알면 알수록 과학적인.. 2020. 6. 24.
경주 김유신장군묘 숭무전의 아침 2020.6/21일 숭무전은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흥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드리는 제전이다. 김유신은 가야국 시조 김수로왕의 13세손으로 신라 진평왕 17년 만노군(지금의 충청북도 진천) 태수 김서현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5세에 화랑이 되어 진평왕 51년 낭비성에서 고구려군에게 처음 승리한 이후, 백제 고구려군과 여러 차례 싸워 큰 공을 세웠다. 안으로는 상대등 비담의 반란을 평정하였으며 진덕여왕 8년에는 김춘추를 태종무열왕릉으로 옹립하였다, 태종 무열왕 7년에는 백제를 병합하고 문무왕 8년에는 고구려를 통합하여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에 나라에서는 신라 최고의 관직인 태대각간을 제수하였고, 문무왕 13년 79세로 세상을 떠나자 금산원에서 장사 지냈으며 그 뒤 흥덕왕 10년에.. 2020.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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